[커버스타]
`올드맨`이 아닌 `뉴맨`으로,<로드 투 퍼디션>의 폴 뉴먼
2002-10-02
글 : 백은하 ( <매거진t>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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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노인이 두명의 사내아이와 주사위놀이를 즐기고 있다. 그러나 이 따뜻한 풍경은 이내 균열을 일으키고 만다. 자신의 아들이 위험에 처할 것을 두려워한 노인은 그 아이들의 아비(톰 행크스)를 제거하라고 명령한다. “마이클, 눈을 크게 뜨고 보게! 이것이 우리가 선택한 인생이고, 우리가 끌고온 인생이야. 하나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중 누구도 천국에 가지 못할 거라는 거지.” 풍모는 여유롭고 인자하지만 냉혈한 생존의 법칙을 품고 사는 1930년대 대공황기의 시카고 암흑가의 보스, <로드 투 퍼디션>의 존 루니는 그렇게 폴 뉴먼과 닮은꼴이다. 세상을 정화시킬 듯 깊고 푸른 눈을 가졌지만 늘 반영웅이었던 그에게서 어차피 인자한 어른이라든지 푸근한 아버지의 모습을 기대하기엔 무리가 있지 않았나. 유약하지도 거칠지도 따뜻하지도 냉정하지도 않은 그의 말투와 눈빛은 폴 뉴먼을 일흔일곱의 나이에도 뒤켠에 물러선 ‘올드맨’이 아니라 끊임없이 남자들에게 경쟁심과 승부욕을 불러일으키는 경쟁력 있는 ‘뉴맨’으로 존재하게 한다. 하긴, <컬러 오브 머니>에서도 <노스바스의 추억>에서도 젊고 생생한 톰 크루즈와 브루스 윌리스를 알게 모르게 긴장시키던 그가 아니었던가.

예일대 드라마스쿨 출신의 클래식한 미남 폴 뉴먼은 브로드웨이 첫 작품으로 스크린으로 도약하는 행운을 거머쥐었다.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에서의 클래식한 연기나 <저들은 날 좋아해>에서의 거친 원석 같은 이미지는 여성팬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히 섹스어필했지만 <내일을 향해 쏴라> <허슬러> <스팅> 등에서 보여주었던 반영웅적 카리스마는 그를 단순히 여성들의 가슴에 핀 푸른 눈의 ‘꽃미남’에서 남성들의 영웅으로 등극시켰다. 특히 24년 뒤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컬러 오브 머니>로 이어지며 재빠른 도박사의 위트에 연륜에서 오는 노련함까지 더한 <허슬러>에서의 내기 당구의 귀재 ‘패스트 에디’(Fast Eddie)나 만취한 상태로 주차장 미터기를 파손시킨 죄로 감옥에 들어가 기발한 방법으로 탈옥을 반복하던 <폭력탈옥>(Cool Hand Luke)의 삐딱하고 쿨한 루크 등은 그의 잘생긴 외모를 잠시 잊을 만큼 열광적인 남성팬들의 반응을 이끌어냈다.

“이제야 지름길을 알 것 같아.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어떻게 내 에너지들을 더 잘 보관하는지….” 1954년 <실버 챌리스>로 데뷔한 이후 한번의 휴식없이 액셀을 밟아온 폴 뉴먼. 강렬한 스피드의 카레이싱에 온몸을 맡기는 한편 클럽에서 피아노 연주를 즐기는 이 ‘원더풀그레이’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끊임없이 맥박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영화를 찍을 때마다 늘 이게 내 인생 마지막 영화야, 라고 말하지. 하지만 벌써 10년 동안 그렇게 말하고 있는 셈이야. 앞으로도 2편의 영화가 개봉을 앞두고 있고…. 내가 보기엔 은퇴하려면 한참 남은 것 같아.” 지난 64년 <베이비 원트 어 키스>를 마지막으로 연극무대를 떠났던 그는 오는 12월부터 내년 1월까지 손튼 와일더의 고전극을 각색한 <우리 읍내>를 통해 뉴욕 브로드웨이 무대에 오랜만에 인사를 건넬 것이고 로버트 레드퍼드가 그러하듯, 한참은 그 빨려들 듯한 푸른 눈으로 스크린 너머 우리를 응시할 것이다. 60년대 말 버치 캐시디와 선댄스 키드가 쏘아올린 마지막 총탄이 정지되었듯, 폭발할 것 같은 젊음의 열정 또한 부패되지 않은 상태로 봉인되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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