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라이언 일병이 어떻게 생긴 놈이야” 베를린을 함락시키기 위해 남은 전력을 모두 밀어붙이던 연합군 소속 밀러 대위 수하의 대원들은 자신들에게 떨어진 명령이 한심하고 화가 나기까지 한다. 적과 싸우기에도 힘이 부치는 판에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졸병 하나를 찾아서 고국으로 돌려보내라니.영화 절반이 지나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라이언 일병은, 그 모습만으로도 감동이었다. 귀여우면서도 믿음직한, 우리 모두의 막내가 거기 있었다. 전선의 한가운데에서도 기죽지 않고 생기가 남아 입을 활짝 벌리고 웃는 그 청년이라면 세상 어디에서도 남들의 신뢰를 잃지 않고 잘 해나갈 것 같다. 맷 데이먼은 바로 그런 인상이다. 어쩌면 이 인간은 딴따라판보다 건실한 조직사회에 몸담고 있어야 할 것 같다. 사소한 감성의 차이에 연연하는 까탈스러움이나, 타인의 감정을 후벼팔 위악적인 느낌이 없다. 대신 긍정적이며 책임감이 강해 보인다. 앞짱구에 주걱턱까진 아니라도 적잖이 솟아난 턱이, 위 아래로 눈·코·입을 옥죄는 구도는 고집스러움에 더해 어딘가 편집증이 있을 것 같은 혐의도 준다. 아무래도 자발적으로 아웃사이더가 되기는 힘든 얼굴이다.
<레인메이커>에서 시작해 <본 아이덴터티>까지 그가 주연한 영화가 10편 남짓한 영화는, 이중인격인 <리플리>, 야인의 냉소를 드리운 <베가번스의 전설> 같은 예외적인 캐릭터를 빼고 대체로 정신적으로 건실하고, 육체적으로 성실한 인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모처럼 도전한 액션영화 <본 아이덴터티>도 변신이라고 말하긴 힘들다. 책임감이 강해 임무를 완벽히 수행하지만 킬러로 살아갈 만큼 잔혹하지는 않아 보이는 인상이, 킬러가 기억상실증을 계기로 그 비정한 세계를 떠나는 드라마에 어울린다. 하지만 변화는 있다. 눈동자는 항상 가운데에 놓고 고개를 돌려 옆을 보는 우직하던 그가 익숙하고 재빠르게 곁눈질을 한다. 훈련된 전사처럼 민첩하고 기계적으로 움직인다. 석달 동안 복싱과 필리핀 무술 ‘칼리’를 단련한 결과다. 그에겐 비슷한 일화가 많이 따라다닌다. <커리지 언더 파이어>에선 체중 45파운드를 줄인 탓에 내분비장애를 앓았고, <베가번스의 전설> 때는 골프를 연습하다가 갈비뼈를 다쳤다. 89년 텔레비전영화에 캐스팅되기까지, 10년 동안 하버드대학도 중퇴하면서 ‘수천번의 오디션’을 거쳤다. 이런 끈기와 성실함이라면 루저가 되기도 글렀다. 앞짱구마저 들어가 기름기 흐르는 번듯한 이마가 됐다면 참 매력없을 인간이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마지막 전투장면을 앞두고 스필버그 감독은 자기가 찍은 최고 명장면이 될 거라고 했다. 나는 보호받아야 할 라이언 일병 역이어서 이선에 있어야 했다. 톰 행크스는 행복하겠다 싶으면서 못내 속상했다.… (<본 아이덴터티> 이후) 내 이름은 액션 히어로의 명단에 올랐다. 스탤론이나 슈워제네거 같은 노장들이 계속 액션을 할 테니까 새로운 이가 나오는 것도 좋지 않은가.” 정말 액션영화에 맛을 들인 걸까. 몇달 전 볼프강 페터슨 감독이 <배트맨과 슈퍼맨>에 맷 데이먼을 캐스팅하고 싶다고 공개적으로 구애를 보냈으나 그는 아직 대답이 없다. 대신 스티븐 소더버그가 연출할 예정인, 미국 대기업 ADM의 비리사건을 다룬 <밀고자>(가제)에 줄리아 로버츠와 함께 출연할 것이라는 말이 나돈다.
맷 데이먼은 지난 10월8일 한 레스토랑에서 가족, 20여명의 팬, 봄볼로티 파스타, 새우칵테일과 함께 생일파티를 열고 만 32살이 됐다. 미니 드라이버, 페넬로페 크루즈, 위노나 라이더를 거쳐 만난, 한때 벤 애플렉의 비서였던 오데사 휘트마이어와 내년 겨울에 결혼할 예정이다. 막내로 있기는 더이상 힘들다. 귀엽고 믿음직하던 그 인상이 가장의 지위가 돼서 어떤 이미지를 띠게 될까. 어떻든 주류사회에 들어선 뒤에도, 아트영화 같은 모습으로 펀딩을 못해 구스 반 산트가 사재를 털어넣은 <제리>(2002)에 출연하고 벤 애플렉과 함께 ‘그린라이트 프로젝트’를 통해 신인 감독을 발굴·지원하고 있는 그라면, 돈과 규모로 승부하는 할리우드에 좀더 인간의 체취를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해도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