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영화,환각제보다 독한, <로드무비>의 배우 서린
2002-10-30
글 : 김현정 (객원기자)
사진 : 정진환

서린은 카메라 앞에서도 그리 밝아 보이지 않았다. 제작사 직원으로부터 <로드무비> 흥행이 생각보다 부진하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탓이었다. 동성애를 다뤘다는 이유로 많은 관심을 받았고, 인터뷰 전날엔 팬들과 온라인 채팅까지 진행했지만, 데뷔작 <아이 러브 유>처럼 잊혀지고 말 것만 같아 약간 속이 상한 것 같았다. 그러나 난감했던 순간은 잠깐이었다. “<아이 러브 유>는 극장에서 봤는데 관객이 저까지 일곱명밖에 없는 거예요. <로드무비>는 잘돼야 하는데… 전 홍보에 별로 신경 안 썼거든요. 근데 사람들이 <로드무비>를 너무 안 보니까 솔직히 열받는 거 있죠.” (웃음) 꺼내기 힘들었던 이야기를 단칼에 질러버리고 난 뒤, ‘문화충격’까지 경험했던 <로드무비> 촬영 이야기는 막힘없이 흘러가기 시작했다.

서린은 <아이 러브 유> 촬영이 끝나자마자 <로드무비>에 합류했다. “처음엔 당황했죠. 제가 <아이 러브 유>에선 머리도 길고 청순한 여자로 나왔잖아요. 바로 일주가 되려니까… 그래도 2주 정도 지나고 나니까 괜찮더라구요. 존재조차 몰랐던 동성애자들도 이해하게 되고.” 김남주와 오지호 등이 함께 출연한 <아이 러브 유>는 엇갈린 인연 때문에 서로의 뒷모습만을 바라보게 되는 네 남녀의, 투명하다 못해 비현실적인 사랑 이야기. 서린은 그런 첫 영화의 감성을 채 벗기도 전에 환각제를 몇알이나 털어넣고선 알몸으로 남자들과 어울리곤 하는 다방 아가씨 일주 역에 뛰어들었다. 감독과 처음 만날 때까지만 해도 시나리오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게 사실이지만, 곧 서로의 마음을 맞춰가면서 영화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싸우지 않고 넘어간 장면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그러면 난 이대론 촬영 못하겠다고 버티고, 감독님은 촉촉한 눈빛으로 애원하는 것처럼 쳐다보고. 전신노출을 해야 하는 노래방 장면이 특히 그랬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이게 현실이구나, 깨닫게 되더라고요.” 게이인 남자를 사랑하는 일주가 너무 안 돼서, 소주 반병을 새우깡도 없이 마시고 카메라 앞에 선 것이 마지막. 서린은 길 위를 떠돌아다닌 세달 반의 촬영을 지난해 9월에 마쳤다.

<로드무비>가 개봉을 기다리는 동안 서린은 유지태와 <내츄럴시티>를 찍었다. 그녀가 <내츄럴시티>에서 연기한 인물은 정해진 수명을 가지고 태어난 안드로이드지만, “인간이 갖지 못한 무언가를 가진” 여인. 슬픔을 담은 <아이 러브 유>의 순한 눈동자가 인생의 나락도 혼자 감당해내는 <로드무비>의 독하고도 허전한 눈빛으로 나타났는데, <내츄럴시티>에선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안드로이드의 인간성을 또 어떻게 표현할까. 몸을 움직이고 싶은 욕심 때문에 연기를 택한 서린은 3년 동안 그 소망을 꽤 만족스럽게 이루어낸 것 같았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