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런던] 지금 영국영화는 어디에 서 있는가
2002-11-11
글 : 이지연 (런던 통신원)
<모번 켈러의 여행>, <28일 뒤에> 새로운 모색으로 주목받아
<모번 켈러의 여행>

지난 11월5일 열린 영국영화위원회(British Film Council) 모임에서 이 기구의 의장이자 감독인 앨런 파커는 영국영화의 위기를 선언했다. 그의 이러한 선언은, 5년 넘게 지속돼온 내셔널 로터리 펀드 지원과 파격적인 세금 혜택 등의 영국 영화산업 진흥책이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뼈아픈 인정이기도 하다. 실제로 지난해 동안 70여편의 영화가 제작됐으나 그중 극장에서 상영될 기회를 잡은 영화는 24편에 불과했고, 올해는 지난해의 절반 정도인 40편의 영화만이 제작됐다.

앨런 파커는 영국영화가 좀더 창의적이어야 하고, 영국 밖의 시장들을 보는, 적극적인 제작과 배급을 모색할 시점이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러면서 그가 지적한 것은 실제로는 별다른 재정적 지원을 받지 못하는 작은 규모의 제작사가 적은 예산으로 만들어 뜻하지 않게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거나, 미국의 영화사들과 합작, 배급을 같이해서 이루어진 성공 사례들.

마침 그 전주인 11월 첫주 금요일에는 첫 영화 <쥐잡이>로 주목을 받았던 린 램지의 새 영화 <모번 켈러의 여행> (사진)과 <트레인스포팅>의 감독 대니 보일의 새 영화 가 나란히 극장에 걸렸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 두 영화가 앨런 파커가 제시한 영국영화의 새로운 향방 모색에 대한 예언, 혹은 대답이기라도 한 것처럼 보였다는 점이다.

<모번 켈러의 여행>은 린 램지의 강렬하고 감각적인 영상과 연출,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초능력 예지자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줬던 영국 출신 배우 사만사 모튼의 사로잡을 듯한 연기로 평론가들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이제 영국 평론가들은 이 스코틀랜드 출신의 젊은 여감독 린 램지를 영국영화의 새로운 (정말로 낯선) 지평을 열 작가감독의 반열에 올리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한편, 할리우드에서 돌아온 뒤 처음으로 극장용 장편영화를 내놓은 대니 보일은 이 두렵고 무시무시한 공상과학-호러-액션-재난영화로 영국 관객의 관심을 다시 장악한 것처럼 보인다. 18세 등급을 받은 이 영화는 지난주 영국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면서 첫 번째 주말에 이미 1500만파운드를 벌어들였고 런던의 중심가인 웨스트 엔드에서만 무려 13만파운드가 넘는 수입을 올렸다. 대니 보일은 이 영화에서 <트레인스포팅> 이후 계속 그의 영화를 제작해온 앤드루 맥도널드, <비치>의 시나리오를 썼던 알렉스 갤런드와 다시 팀을 이루었다.

두 영화의 공통점이라면 모두 너무나 갑작스럽게 직면한 불가해하고 충격적인 상황에서 시작한다는 것이다. 스코틀랜드 해변의 작은 마을의 슈퍼마켓에서 일하는 21살의 여주인공 모번 켈러가 발견하는 것은 크리스마스 트리 옆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자살한 채 피를 흘리며 누워 있는 남자친구와 그의 유서, 그가 남긴 소설 초고, 자신에게 남겨진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의 주인공은 한달 정도의 코마 상태에서 깨어나 자신이 누워 있던 병원은 물론, 런던 도시 전체가 황폐하게 버려진 채 텅 빈 것을 발견한다. 빅 벤 옆의 웨스터민스터 다리 위는 사람도 차도 모두 사라져버리고, 공포스러운 고요뿐이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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