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퍼 로페즈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타블로이드 신문기사보다 더 믿기 힘들다. “나하고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나를 마(Ma)라고 불러요. 그들은 내가 정말 엄마 같은 타입이라고 말하죠.” “난 약간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에요. 가톨릭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종교적인 분위기가 마치 서커스 링처럼 날 둘러싸고 있죠. 보수적이라고 해도 할 수 없어요.” “술, 담배는 시작도 안 했어요. 엄만 항상 술과 담배가 몸에 나쁘다고 말했거든요. 마약은 물론이고.” 그런데도 믿을 수밖에 없다. 로페즈와 어느 클럽에 동행했던 <롤링스톤> 기자는 그녀가 알코올로 달아오른 사람들과 뒤섞여 열기를 발산하면서도 밤새 단 한번도 술병을 입에 대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어쩌면 로페즈의 마력은 거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고대의 모신(母神)처럼 당당한 몸집을 가진 로페즈. 생명의 기운을 한 모금도 낭비하지 않으면서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만 쏟아내는 그녀는 남자들이 지배하는 세계에서도 희생양으로 전락하지 않는다. 오직 희생을 요구할 뿐이다. 신작 <이너프>는 그처럼 엄격하게 절제된 에너지가 마지막 순간에 쏟아져나오는, 바로 제니퍼 로페즈의 영화다.
<이너프>는 한 남자의 통제에서 스스로 벗어난 여자 슬림의 이야기다. 그녀는 허상이 행복이라고 믿으면서 몇년을 보냈지만, 남편이 본모습을 드러내고 생명을 위협해오자 아이와 함께 달아난다. 사랑이라고 고집했던 지독한 인연. 그 자신도 “원을 따라 달리는 것처럼 자꾸 처음으로 돌아가곤 하는” 함정 같은 관계를 경험했다는 로페즈는 치밀한 살인으로까지 치닫는 슬림의 투쟁을 희망이라고 말한다. “삶은 그 자신이 통제해야 하는 거예요. 됐어, 이걸로 충분해. 이렇게 말하고 나면 돌파구가 생기죠. 살아갈 수 있어요.” 물론 이 말은 타블로이드 신문보다 훨씬 믿을 만하다. 로페즈는 슬림이 거리에서 살아남기 위한 격투기 크라브 마가를 단련해 삶을 되찾듯, 남미의 이름이 주는 선입견을 자부심으로 이겨왔기 때문이다. 댄서가 되고 싶어서 열여덟살에 안락한 중산층 가정을 뛰쳐나온 로페즈는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든 움켜잡았다. 처음엔 춤, 그 다음엔 노래, 아직까지는 연기가 마지막. <U턴> <블러드 앤 와인> <셀리나> <조지 클루니의 표적> 등을 거치면서 남들이 거절한 역도 마다하지 않았고, 거침없이 할리우드를 헤쳐나왔다. 그곳은 흑인보다도 남미 핏줄을 더 천대했지만, “꿈이 있어서” 기를 꺾을 수 없었다. 그리고 2001년, 로페즈는 영화 <웨딩플래너>와 앨범 <J. Lo>를 동시에 넘버원으로 올려놓은 첫 번째 여자가 됐다.
지금 로페즈는 세 번째 결혼식을 준비하고 있다. 그녀가 날렵한 갱스터로 등장해 도와줘야 하는, 약간 믿음이 가지 않는 <기글리>의 킬러 벤 애플렉이 세 번째 제물이다. 웨이터였던 첫 번째 남편과 댄서이자 안무가였던 두 번째 남편은 모두 사마귀처럼 무자비한 로페즈에게 짓눌렸는데, 톱스타인 벤 애플렉은 무사할 수 있을까. 로페즈는 또다시 믿지 못할 이야기를 되풀이한다. “가정을 갖고 싶고, 아이를 갖고 싶어요. 가족을 꾸리는 건 모든 여자가 가진 꿈이죠.” 그러나 그녀는 제니퍼 로페즈다. “그렇다고 해서 내 경력을 포기할 생각은 없어요. 아이에겐 상처가 될지 모르지만, 시대는 변하는 법이니까.” 남미 대륙 풀숲에 남아 있는 조각처럼 굳센 골격을 가진 로페즈는 닮고 싶은 여자다. 그녀의 욕망은 언제나 떳떳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