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영화]
내 인생의 여자, <올리브 나무 사이로>
2002-11-13

지난 7년, 나는 아내와 함께 제법 많은 시간을 영화관과 극장에서 보냈다. 아내는 현대무용가인데 영화를 전공한 나와는 작품을 같이 보기에 더할 나위 없이 궁합이 맞는다. 나는 전형적으로 논리적이고 지도 그리기를 좋아하는 남성 호르몬형이고, 아내는 더듬이가 발달한 여성 호르몬형이다. 게다가 움직임의 전문가인 아내는 내가 잊고 있었던 중요한 면들을 늘 일깨워 주었다. 소리에 맞춰 몸짓을 구성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직관적 느낌 같은 것 말이다.

내가 처음으로 아내의 손을 잡았던 곳은 뉴욕 링컨센터의 월터 리드 영화관이었다. 그때, 우리 앞에서 상영되고 있던 영화가 키아로스타미의 <올리브 나무 사이로>였다. 나는 날짜를 잘 기억하지 않지만 그날이 7년 전 늦은 4월이었다는 것은 기억한다.

<올리브 나무 사이로>는 선선한 초가을에 시골길로 나들이 가는 것 같은 영화였다. 오래 전이라 내용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그 느낌은 잊을 수 없다. 찬송에 가깝게 중얼거리는 듯한 말투, 고단한 현실 속의 맑은 눈동자들, 바람 소리가 와 닿을 것 같은 풍경…. 그토록 쉽게, 자분자분 현실을 이야기하는 영화를 나는 그 이전에는 본 적이 없었다.

그때는 뉴욕으로 영화를 공부하러 간 지 몇달 되지 않았을 때였다. 영화라는 거대한 대상을 파악하고 이해해야 된다고 두손을 불끈 쥐고 있을 때였다. 그런 촌뜨기의 마음을 이 영화가 성큼 다가와서는 확 열어버린 것이다. 그건 당시의 나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물론 더한 충격은 아내의 손을 잡았다는 거였다. 나는 여자의 손을 덥석 잡을 수 있는 위인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내 인생에 아주 중요한 변화가 동시다발로 일어난 순간이었다. 아내의 손과 내 손 사이에 흐르는 땀을 느끼면서, 나는 어린아이처럼 몸으로 세상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영화는 계속 이어졌다. 영화를 만드는 과정이 전체 내용이었던 이 영화는 한쌍의 남녀를 배우로 등장시킨다. 그런데 현실에서 남자는 여자에게 청혼을 했다가 여자 집으로부터 거절을 당한 사이다. 지진으로 피폐해진 마을과 궁핍한 자신의 사정을 설명하며 다시 여자에게 매달리는 남자와 자신의 집에서 바보같이 거절 당한 남자를 피하는 여자가 옥신각신한다. 문제는 연기를 해야 되는 여자가 남자를 쳐다보지 않으려는 데에서 시작된다. 여자는 이런 경우의 관습에 따라 남자를 보지 않으려고 하는데, 아무리 이것이 영화를 위한 연기라고 설득해도 고집을 꺾지 않는다. 여자는 자신만의 질박한 진정성으로 영화와 현실의 구분을 무시해버린다. 맞은편의 영화 스탭들은 망연자실해진다. 이 코미디에 가까운 상황은 급기야 그녀가 촬영장을 떠나버리면서 투명한 울림으로 변해 간다. 자신이 전혀 거절당한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남자가 허둥지둥 여자를 뒤따른다. 여자는 이미 저 멀리 올리브 나무 숲을 지나가고 있다.

서로 손을 맞잡은 나와 아내는 카메라 앵글 덕분에 신의 위치에서 그 두 남녀를 내려다보게 되었다. 한없이 이어질 것 같은 이 산책 같은 추격신은 그 자체로 신의 세계로 올라가는 길이 되어버렸다. 우리의 잣대로 재단할 수 있는 우리만의 세계로 전혀 들어오지 않는 여자, 이해할 수 없는 의지로 자신을 앞질러 가버린 여자를 한없이 뒤쫓아가는 남자, 이 둘이 끝없이 올리브 나무 아래를 걸어갈 때, 고단한 삶을 관통해버리는 어떤 힘, 즉 신을 느낀 것은 우연이 아니다. 나는 그때 영화의 초월적 힘을 처음 제대로 접하고 있었던 것이다.

신과 삶이 이렇듯 뒤엉켜 다가온 날이었다. 아내가 내 손을 거절하지 않았기에 나는 7년째 아내의 손을 잡고 올리브 나무 아래를 걷고 있다. 우리 삶의 중요한 한 지점에, 이 영화가 우리 앞에 펼쳐졌던 유일한 세계였다는 것이 나는 지금도 신기하다.

글: 권병철/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강사·연출 준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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