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개막한 제7회 부산국제영화제의 경쟁부문인 ‘뉴 커런츠’에 초청된 11편의 작품들이 18일까지 모두 공개됐다. 이 가운데 우선 화제작으로 떠오른 건 박찬옥(34) 감독의 장편 데뷔작 <질투는 나의 힘>이다. 지난 15일 저녁 8시 <질투는 나의 힘>이 처음 공개됐을 때, 상영 뒤 열린 ‘관객과의 대화’ 시간엔 5백여 명의 관객들이 자리를 뜨지 않고 1시간 동안 박 감독과 주연배우인 배종옥, 박해일, 서영씨에게 뜨거운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박 감독은 미술 교사로 교편을 잡다 영화로 전공을 바꾼 뒤 홍상수 감독의 <오! 수정>(2000) 조감독을 지냈다. 곱상한 소년의 느낌을 주는 박 감독은 한 가지 질문에 적어도 15초 이상은 생각하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한 마디 한 마디를 골똘히 생각한 뒤 진중하게 답한다. 그러나 자신의 연출 의도나 시나리오 착상 과정에 대해선 답변이 명쾌하다.
- 관객에게 감정이입을 요구하는 대신 감정을 물밑에 잠기도록 하는 데 애쓴 듯하다.
= 단편영화를 만들 때 두 가지 방식을 다 해봤다. 관객의 감정을 건드리면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과, 그런 장치를 버리는 방식. 후자의 경우 관객들이 ‘이게 뭐냐’며 불쾌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 영화에선 후자로 갔다. 그러나 반드시 한 가지 스타일만 고집하지는 않을 것이다. 언젠가는 지독한 신파도 한번 해보고 싶다.
- 홍상수 감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 홍 감독은 배우들의 연기를 끌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관습적인 장치들을 많이 포기하고 이야기를 풀어가려고 하는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 <질투…>에서 홍 감독의 영향이 느껴진다.
= 그의 조감독 출신이란 이유로 홍 감독이 지닌 연출 기법의 장점까지 모두 지우려고 애쓰는 건 현명한 처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질투…>를 본 뒤 “홍 감독을 연상시킨다, 가령 술 마시는 장면이 많이 나오지 않느냐”는 식의 얘기를 많이 들었다. 그런 말은 “박찬옥과 박찬호는 거의 똑같다”는 명제와 같은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 <질투…>라는 제목은 어디서 따왔나.
= 기형도 시인의 시에서 따왔다. 시를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쓴 건 아니다. 시나리오의 틀을 잡고 난 뒤 시를 읽었는데, 시나리오의 내용과 일맥상통한다는 생각이 들어 그 구절을 빌려왔다. 시를 영화 끝날 때 삽입하자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그 훌륭한 시를 감당하기엔 내 영화가 미약하다는 생각이 들어 포기했다. 내 어눌한 답변보다는 그 시를 한번 읽어보는 게 ‘질투는 나의 힘’이란 제목에 대한 보충설명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