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단편 Review] 사이코 드라마/내 사랑 십자드라이버
2002-11-19

▣ 사이코 드라마

어느 날 오숙경이라는 스물여섯의 여자가 한 낡은 정신병원의 신참 간호사로 들어온다. 굉장히 새침해 보이는 간호사가 오숙경에게 밤 근무를 부탁하는 바람에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돌아가신 아버지의 사진과 대화하며 밤을 지새우게 된다. 그때 오숙경은 창문 밖에서 누군가가 노크하는 소리를 듣는다. 그 사람은 바로 이 병원의 환자로 있는 박동우라는 남자였다. 이후로 오숙경은 이 잘생긴 청년에게 연모의 감정을 갖게 된다.

정신병원 환자로 입원해 있는 남자 박동우에 대해 병원 기록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나라 일이 걱정되어 잠을 이루지 못함.” 그러나 겉모습만 보면 그는 정신병원의 환자로 보이지 않는 인물이다. 잘생기고 건장한 모습을 한 청년이기에 간호사인 오숙경이 그에게 비밀스런 연정을 가지는 것도 무리는 아닌 것이다. 게다가 오숙경이라는 이 신참 간호사는 새로 온 병원에서 모두가 자신만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것 같다며 쭈뼛쭈뼛해하던 처지가 아니던가. 영화의 한 장면에서 그녀는 요즘 자신이 행복하다며 사이코 드라마의 무대에서 심수봉의 <사랑밖엔 난 몰라>를 부르기까지 한다. 그러나 오숙경은 박동우가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는 환자, 여하튼 보통 사람은 아님을 잊지 말았어야 했다. 뒤에 밝혀지듯이 박동우라는 이 인물은 자신이 위대한 박정희 ‘장군’의 화신임을 확신하고 있는 ‘위험한’ 과대망상증 환자였던 것이다. 마침내 그의 위험성은 코믹함(장난감 총을 쏴대며 고함을 치는 꼴이라니)과 불안함(그래도 여하튼 그는 병원 사람들을 위협하는 존재이니까)이 교묘하게 교차하는 클라이맥스로 우리를 데려간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한 환자가 사이코 드라마의 무대에서 “병원이 위험해. 무너지려고 그래”라고 이야기하는데, 그래, 그 말을 믿었어야 했다. <사이코 드라마>는 죽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하고 있는 간호사와 어떤 ‘나쁜’ 아버지(비록 생부는 아니지만)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는 정신병원 환자 사이의 관계를 그리면서 사람들의 ‘망상’에 대해 들여다보는 ‘심리극’이다. 영상원에서 수학한 윤재연 감독이 차분한 연출력을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 내 사랑 십자드라이버

주인공 남자는 기계 수리공으로 일한다. 그에게는 남몰래 연정을 품은 여자가 하나 있는데, 어느 날 그는 그 여자를 자신 곁에 두겠다는 바람을 실현시키고자 그만 그녀를 자신의 방에 납치해온다. 그런데 이 여자가 갑자기 난폭한 반응을 보이자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게 된 남자는 극단으로 치닫게 된다.

<내 사랑 십자드라이버>는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이 <내 사랑에게>(To My Love)이듯이 주인공 남자가 자신이 홀로 사랑하는 여자에게 자신의 심정을 이야기하는 일종의 러브레터와도 같은 영화다. 영화는 시종 이 남자의 내레이션을 들려주는데, 이것을 들어보면 이 남자가 남들과는 좀 다른 세계관 혹은 인간관을 가진 문제적인 인물임을 알 수가 있게 된다. 가령 그는 이런 말들을 한다. “당시의 자동차는 날 이해했을 걸요. 기계는 사람보다 나으니까요.” “몸이란 누군가에 의해 기억되게 마련이죠. 마치 기계처럼요.” 여기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남자는 세상 모든 것을 기계에 유비시켜 생각하며 기계가 그 어떤 것보다도 심지어 사람보다도 낫다고 여기는 인물이다. 그렇기에 영화의 제목이 <내 사랑 십자드라이버>인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십자드라이버야말로 기계를 고치고 조작하는 그의 대리손 같은 것인데, 문제는 이 남자가 어떤 때는 그것을 사람에게도 ‘무리하게’ 들이대기조차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그는 어릴 적 엄마가 어떤 남자와 정사를 벌이는 장면을 목격하고는 그만 자신의 십자드라이버를 ‘이용’해본 적이 있으며 마치 <콜렉터>의 주인공처럼 자신이 연모하는 여성을 납치해와서는 또 그만 그것을 인간에게 ‘적용’해버리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내 사랑 십자드라이버>가 피비린내 가득한 영화라고 오해할 필요는 없다. 영상원에서 수학한 하기호 감독은 레니 크레비츠의 음악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를 효과적으로 이용하고 그에 걸맞은 제법 세련된 이미지를 만들어내면서 소유와 집착, 콤플렉스 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 한편을 만들어냈다. 홍성남/ 영화평론가 antihong@hite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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