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해안선>으로 돌아온 장동건
2002-11-20
글 : 박은영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연기의 해안선에,발가벗고 다시 서다

기자라는 직업은 가끔씩 얼굴에 철판을 뒤집어써야 하는 일이다. 장염과 감기몸살을 동시에 얻어, 사흘 동안 죽과 링거주사약으로 연명했다는 장동건은 ‘톡’ 치면 ‘폭’ 쓰러질 듯 핼쑥했다. 이런 환자와의 인터뷰를 고집한다는 것은 얼마나 비인간적인가. <해안선>의 부산영화제 개막 상영을 앞두고, 우리는 일찌감치 장동건을 인터뷰하기로 했었다. 그날 장동건이 병원으로 실려 갔다는 ‘비보’를 들었고, 이른 쾌유를 기원하며 며칠 뒤로 약속을 미뤘다가, 또 다시 부산영화제 개막 당일로 옮겨 잡았다. 그렇지만 상황은 나아 보이지 않았다. 기자회견장에서 만난 장동건은 지치고 아픈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이 인터뷰는 성사되야만 했다. 사람 만나고 기사 쓰는 것이 일인 기자로선, <해안선>의 홍보 카피 그대로, 데스크가 “까라면 까”야 하는 것이다. 인터뷰를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죄책감이 엄습하고 있었다.

장동건은 공연히 아픈 게 아닌 것 같았다. 촬영을 끝낸 것이 꽤 오래 전 일이니, 그것이 순전히 <해안선>의 여독이랄 수는 없겠지만, 아니라고도 할 수 없었다. 기자 시사를 거르고 회견장에만 나타난 장동건은 “여러분 앞에 뻔뻔스럽게 서기 위해 일부러 영화를 안 봤다”고 말했다. 물론 문제는 일정과 컨디션이었겠지만, 그 인사말에는 일말의 진심이 담겨 있었다. 장동건이 개막식장으로 향하기 전, 짧은 짬에 들려준 이야기는 이랬다. “그 어느 때보다도 영화 보기가 두려워요. 이 영화에선 제 장점을 써 먹을 데가 없었거든요. 다른 영화에서처럼 카메라 앵글이나 워킹으로 제 부족한 점을 커버해준 것도 아니구요. 뭐랄까… 발가벗고 서 있는 느낌이에요.” 며칠 동안 그를 가장 심하게 괴롭힌 ‘병마’는 자신의 애장품을, 자신의 분신을, 처음 세상에 꺼내 보이는 이의 과도한 근심걱정이 아니었을까.

사실 그럴 만도 했다. <해안선>은 장동건에겐 일종의 ‘모험’이었다. 화사한 미모의 스타급 배우가 폭력이 화두인 저예산 작가감독의 영화에 ‘자진해서’ 출연한다는 것은, 요즘 영화계 풍토에서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어쩌면 ‘스타’ 장동건은 많은 것을 잃을 수도 있었다. 그의 개런티는 파격적으로 삭감될 것이고, 그의 달콤한 이미지를 사랑한 소녀들의 가슴은 무너져내릴 것이며, 광고주들은 아우성을 칠지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김기덕 감독과 좋은 ‘화음’을 낼 수 있을지가 미지수였다.

“반대, 있었죠. 주변에서 걱정 많이들 해주셨어요. 그런데 저는 <2009 로스트 메모리즈>를 10개월 넘게 촬영하면서, 상업영화의 주인공 캐릭터에는 일정한 선이 그어져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 선을 한번 넘고 싶었죠. 우리가 일상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어떤 감정의 극한을 표출해보고 싶었어요. <나쁜 남자>를 보고, 바로 저거다, 했죠.” 다른 건 더 볼 것도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었던 거다. “<친구> 처럼 <해안선>도 연기 영역을 넓혀 보겠다는, 제 필요에 의해서 선택한 작품이에요. <2009 로스트 메모리즈>는 제가 대중배우로 건재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출연했고, 흥행이 되길 바랐던 작품이구요. 물론 생각한 것과 다른 결과가 나타나기도 하지만.”

<해안선>에서 장동건은 민간인을 오인사살하고 미쳐가는 강 상병을 연기했다. 간첩을 잡겠다는 순진한 일념이 광기로 돌변하는 과정을, 그는 섬뜩하게 그리고 처연하게 그려내고 있다. 장동건은 그것을 크랭크인 직전에 있었던 2박3일의 지옥훈련 덕으로 돌렸다. “무척 힘들었어요. 강 상병의 상황을 미리 몸으로 느껴본 거죠. 체력적으로 그렇게 극한적인 상황에 몰리면, 사람이 미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기덕 감독은 몸과 마음을 사리지 않았던 장동건에 대해 고마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을 동시에 품고 있는 듯했다. “그동안 동건씨가 쌓아올린 이미지를 깎아먹지 않기만을 기대했습니다. 그랬다면 무척 미안했겠죠. 영화를 미리 본 사람들이 이 영화로 동건씨가 손해볼 게 없겠다고 말해줘서, 안심했습니다.” 장동건도 김기덕 감독을 두고,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전 제 객기 때문에 감독님 영화의 개성이 흐려질까봐 걱정했어요. 도시 총각이 멀쩡한 시골 처녀 마음 흔들어놓는 것처럼요.” 서로 많이 다르지만, ‘궁합’은 잘 맞았다는 것이, 함께한 작업에 대한 그들의 공통된 소감이기도 했다.

장동건이 부산에서 2박3일간 머문다는 해운대 파라다이스호텔 객실은 개막식 행차 준비로 분주했다. 몇 시간 뒤면 부산의 관객과 함께 <해안선>을 감상하게 될 장동건은, 꼭 시험날 아침 책가방을 꾸리는 수험생처럼 잔뜩 긴장한 얼굴이었다. “솔직히 처음엔 흥행 부담이 없었거든요. 흥행이 안 되더라도 제 책임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었고, 그렇게 잔머리를 굴린 감도 없지 않아요. 그런데 지금은 상업성 있는 배우가 저예산영화에 출연한 선례라니까, 부담이 많이 돼요. 좋은 선례로 남아야 할 텐데….” 장동건은 더이상 자신의 미모를 저주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자신의 ‘허기’가 무엇인지, 어떻게 채워나가야 할지를 깨우쳐가고 있었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