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이름과 똑같이 생길 수가!”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 그것은 <대니의 질투>(Man in the Moon, 1991)라는 아담한 성장영화였다- 그만 감탄하고 말았다. 톡 튀어나온 짱구 이마와 꼭꼭 당겨 묶은 24K의 금발, 호기심 많은 눈, 하고 싶은 말들이 소복이 담긴 꽃삽 같은 턱. 영화 속에서 유난히도 달을 많이 바라보던 소녀는 반짝이는 은제 티스푼 위에 올라앉은 레몬 아이스크림처럼 입 안을 굴러다니는 리즈 위더스푼이라는 이름과 완벽하게 하나였다. 포니 테일의 소녀는 이내 쑥쑥 자라 자기보다 더 예쁜 남편(라이언 필립)을 얻고 아기 엄마가 되었지만, 리즈 위더스푼은 여전히 그녀에게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도 야무지고 상큼하며, 똑 부러진 몸짓으로 자기를 주목하라 보챈다. 딸 아바를 세상에 내보낸 것은 그동안 위더스푼이 해낸 많은 큰일 중 하나일 뿐이다. 그녀는 <일렉션> <플레전트 빌>처럼 칭찬받는 영화에서 당당히 촉망받는 히로인으로 고개를 치켜들었고, 마치 정해진 순서인 양 <금발이 너무해>와 <스위트 알라바마>를 통해 그녀의 유명한 금발을 박스오피스의 황금 부적으로 만들었다. 성미 급한 평자들은 <스위트 알라바마>가 <런어웨이 브라이드>의 오프닝 기록을 깬 것을 계기로 위더스푼을 차세대 줄리아 로버츠로 점찍기도 했다. 하긴 멕 라이언의 단골 미용실에서 빠져나온 듯한 헤어스타일로 <스위트 알라바마>의 포스터를 온통 차지하고 있는 리즈의 독사진은, 적어도 그녀가 로맨틱코미디 한편을 혼자 책임질 수 있는 여성스타들의 회원제 클럽에 가입했음을 보여준다.
대관절 금발이 뭐기에! 리즈 위더스푼을 이야기하는 글마다(이 기사를 포함해), 블론드에 관한 이러쿵저러쿵은 빠지지 않는다. 고작해야 눈에 잘 띄어서 택시를 잡을 때 유리한 머리 색깔일 뿐 아닌가 하지만 리즈 위더스푼의 경우 금발은 꽤 의미심장하다. 그녀의 연기는, 남부나 캘리포니아의 금발 미녀는 머리에 공기만 가득 차 있거나 속없는 속물이라는 통념을 영리하게 올라타 관객을 어르고 뺨쳤던 <벤자민 일병>의 골디 혼, <워킹 걸>의 멜라니 그리피스를 잇는다. 그녀들은 바비 인형인 척한다. 위장은 아니다. 스스로도 바비 인형이기를 즐긴다. 하지만 적당한 순간이 오면 그녀들은 특정한 외모의 여자에 대한 우리의 무의식적 오만을, 바비 인형처럼 갖고 논다. 전형적인 외모, 애니메이션 더빙에 안성맞춤인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배우 리즈 위더스푼에게 조건이고 도전이다. LA의 비치볼 색 패션으로 하버드 캠퍼스에서 왕따가 되는 <금발이 너무해>의 엘, 병적인 야심가 모범생 <일렉션>의 트레이시, 순결을 선언한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의 캔자스 소녀 아네트, 고향과 요람을 부끄러워하는 <스위트 알라바마>의 디자이너 멜라니는 모두 금발의 스테레오타입을 끌어들인 캐릭터지만 엄밀히 말해 매혹의 대상이 아니라 이방의 존재며 일종의 ‘괴물’이다. 자연히 위더스푼의 연기는 과장의 미학을 따른다. 쥐가 나도록 우아하게 뻗은 손끝, 한들거리는 걸음걸이, 힘주어 빚어진 억양과 음색. 위더스푼이 스스로를 성격배우로 부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고교 시절 리즈 위더스푼은 치어리더였다. 하지만 치어리더를 하는 동안만 친구들과 섞이는 여학생이었다. 과장과 호들갑이 필요없는 순간이면 영화 속의 그녀는 무엇인가를 염려하고 확인하고 싶은 듯한 표정을 자주 떠올린다. 그녀의 고민은 그녀의 영화 속 캐릭터들이 지닌 고민처럼 두 시간 만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14살에 연기를 시작해 너무 많은 일을 너무 일찍 겪은 위더스푼은 엄마가 되기 오래 전부터, 미래를 근심하는 버릇이 있었다. <스크림> 등 일련의 10대 호러와 틴에이저 코미디를 족족 거절한 것도 그 때문이고 수잔 서랜던과 프랜시스 맥도먼드가 우상인 것도 그 때문이다. 그것은 흑발로 머리를 염색한다는 소문이 도는 차기작의 모험보다 더 어려운 도전이 될 것이다. 이럴 수가, 기어이 머리 이야기로 끝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