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호, <겨울 연가> 같아요. 그때 정말 추웠거든요.” 초겨울 쌀쌀한 날씨, 낙엽이 수북이 쌓인 공원에서 사진을 찍으며 최지우는 소녀 같은 목소리로 호호거렸다. 3년 만에 <피아노 치는 대통령>으로 스크린에 돌아올 참이지만, 무심결에 <겨울 연가> 얘기를 꺼내는 그녀에게선 아직 ‘텔레비전’ 냄새가 물씬 났다. <신귀공자> <아름다운 날들> <겨울연가>… 그동안 1년에 한편 정도씩 꾸준히 드라마를 하며 최지우는 ‘예쁜 탤런트’로 착실히 입지를 다져왔다. 그때, “드라마 할 때는 영화 시나리오 볼 시간도 없었다”.
최지우를 다시 스크린으로 데려온 영화 <피아노 치는 대통령>은 그런데 최지우를 그냥 ‘예쁜 탤런트’로 가만히 놔두지 않을 듯하다. 지금까지의 최지우가 곱게곱게 단장된 모습이었다면, <피아노 치는 대통령>에서 그녀는 확실히 보기와 다르게 터프해진다. 대통령의 말 안 듣는 딸 영희를 가르치는 고등학교 국어교사 은수가 그녀의 역. 대통령을 일개 학부모로 대하며 과감하게 교사직을 ‘수행’하는 그녀는 한편 엽기적인 선생님이자, 한편으로는 딸 교육에 관한 상담을 하며 대통령도 어느새 눈물을 흘리게 하는 따뜻한 여자다. 과연, 학부모와 교사로 시작된 만남은 그 이상으로 진전하고, 영화는 코미디와 멜로를 뒤섞게 된다. “완전히 캐릭터 변신이죠. 처음 이걸 하겠다고 했을 때 주위에서 최지우가 저런 걸 할 수 있을까, 했어요. 그런데 걱정과 달리 선생님이 잘 이끌어줘서 재밌게 했어요.”
선생님이라고 최지우는 <피아노 치는 대통령>을 ‘선생님’과 함께 찍었다. 바로 안성기 ‘선생님’. 영화 내용과는 반대로 촬영장에서 안성기는 최지우가 보고 배우고 의지하는 ‘선생님’이었다. 안성기와는 이미 <박봉곤 가출사건>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 함께 출연한 적이 있지만, 전작에서는 거의 같이 찍는 장면이 없었던 데 비해 이번에는 나란히 남녀 주연이라 새로운 기분이었다고. <피아노 치는 대통령>을 하게 된 것도, 먼저 캐스팅되어 있던 안성기가 최지우에게 같이 해보자고 하여 이루어졌다고, 최지우는 자랑 아닌 자랑을 했다.
“저는요, 사실 유부녀 언니들하고 친해요. 유호정, 신애라, 오연수… 언니들하고 계모임하면서 별 고민도 다 들어주고 그래요. 또래들보다 더 편한 거 있죠.” 인터뷰 도중 최지우가 가장 신이 나서 말한 건 ‘언니들’ 이야기였다. 이번 ‘캐릭터 변신건’과 관련해서, 미리 포석을 좀 까는 걸까. 자신은 원래 소탈하고 편한 사람이라고, 사실은 이게 참모습이라고 말이다. 마침 인터뷰 시간이 식사시간이라 김밥이며 떡볶이를 사다가 먹으며 이야기를 하고 있으려니, 사실 아닌 게 아니라 최지우가 브라운관에서 보이는 것만큼 새초롬하기만 한 사람은 아니라는 걸 금세 느낄 수 있었다. 잘 웃고, 잘 먹고, 이야기도 조잘조잘 잘하고. 여고생들이 서로 나누는 친화력 같은 것을 최지우는 성격적으로 가지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그런 그녀에게선 의외로 ‘푼수끼’ 같은 것도 느껴졌다. “패션쇼요 앙드레 김 선생님 것만 해요. 그런 옷, 재밌어요. 드레스니까 워킹도 필요없고 그냥 걸어갔다 걸어오면 되거든요.” 이런 식의 평범한 이야기도, 최지우가 하면 어딘가 코믹한 기운을 띠는 거였다. 과연, 영화에서는 어떨지. “그냥 이렇게 있는 것도요, 카메라 앞에서 하려면 굉장히 어려워요”라는 그녀이기에, 아직 최지우의 연기변신은 ‘설’로 남아 있기는 하다. 하지만 원래 성격대로만 나온다면, 아마도 최지우는 아주 색다른 코믹 여배우로 진짜 변신할 수도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