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안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특히 대중 앞에서 일방적으로 소비되었던 사람이라면 더욱더. 펄럭펄럭 걷거나, 피식피식 웃거나, 곧잘 실없는 소리를 해대는 오락프로그램에서, 핏대 선연한 목으로 누구보다 진지하게 열창하는 무대 위에서, 몸에 입은 듯한 자연스러운 연기를 펼쳐 보이며 연민과 동질감 그리고 웃음을 주었던 스크린 안에서, 임창정은 모두 다른 색을 지니고 있다. 모두들 그를 안다고 할 수 있지만 누구도 그를 제대로 안다고 말할 순 없다.
90년, 열입곱살에 무작정 뛰어든 <남부군>을 시작으로 충무로 단역생활을 거쳐 “매니저 형이랑 지하방에서 라면 끓여먹는 게 다였던” 그의 삶은 <비트>과 함께 일대도약을 맞았다. “<비트> 끝나고서는 다르더라구요. 술먹고 자고 일어나니 호텔 스위트 룸이더라니까. 그때 정말 영화 같았어요. 사람 인생 이렇게 바뀌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이후 9장의 앨범을 내고 꾸준한 인기를 유지한 ‘스테디셀러’ 가수로서, 11편이 넘는 빽빽한 필모그래피를 써내려갔던 성실한 배우로서, 그는 꽤 옹골찬 13년을 보냈다. “다시 어릴 때로 돌아가라고 한다면 그건 정말 끔찍해요. 지난 십몇년 동안 아슬아슬 작두를 탄 기분이거든요. 운이 좋아서 안 떨어지고 잘 왔지만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라고 한다면 운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지 의심스러워요.”
허풍끼 가득하지만 미워할 수 없었던 <비트>의 환규, 마흔일곱통의 편지 속에 순정을 담았던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의 야구심판 범수, 10년째 아무도 죽어나가지 않았던 동네의 ‘행복한 장의사’ 재현, <해적, 디스코왕 되다>의 어벙한 똥지게꾼 봉팔이. 하지만 비슷한 듯 조금씩 변주시켜나간 캐릭터를 두고 가끔 그는 “매번 똑같은 역할들만 하냐”는 지적을 받을 때도 있다.
“쌍절곤을 막 돌리다가 뒤로 세 바퀴 넘는 장면을 대역없이 진짜로 찍었거든요. 아, 근데 대역처럼 컷을 나누어서 편집을 해놨더라구요. 근데 진짜진짜진짜 제가 다한 거예요.” 마치 아이처럼 자랑을 늘어놓던 그의 이야기가 이내 함께한 배우들에 대한 끝없는 칭찬으로 넘어간다. “하지원씨도 얼마나 에어로빅연습을 했는지 몰라요. 프로선수들 사이에 데려다놔도 구분 안 갈 정도로.” “신인연기자들도 모두 오디션으로 뽑혀서 연기 못한 친구들이 없었어요.” 그런 그를 보고 있자니, 늘 철없기만 할 것 같던 친구도 이제 어른이 되어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조용히 퍼져나간다. “내년이면 서른하나예요. 그런데 저는 나이먹는 게 너무 좋아요. 어릴 때처럼 헛말 안 하고, 의리도 생기고, 의젓해지고…. 그냥 내 자신이 그렇게 변하는 모습이 멋있어 보여요. 이제 계속 나이먹어 갈 텐데 너무 행복한 일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