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씩씩한 문어소녀처럼,<화장실,어디에요?> 김양희
2002-12-04
글 : 이영진
글 : 이혜정

“저, 강수지랑 달라욧!”누구 닮았네요, 라고만 했는데, 한방 먹일 분위기다. “남들한테 여릿여릿한 이미지로 보이는 거 정말 싫거든요.” 호불호를 또박또박 표하는 김양희(24). 오줌을 마시면 병이 낫는다는 한의사에게 ‘긴’ 펀치를 날리는 문어소녀처럼 씩씩한 성격을 가졌다. 뉴욕, 베이징, 부산의 화장실을 순례하며 인간의 생로병사를 탐사하는 프루트 챈의 <화장실, 어디에요>는 그녀의 데뷔작. 폐수에 오염되어 죽을 병을 앓는 문어소녀로 나온다. 횟집에서 일하는 김선박(장혁)의 도움으로 간이화장실을 휴식처(?)로 얻게 되고 그와 함께 병을 치유하기 위해 돌아다니게 되는 인물(). “처음엔 설정이 인어였어요. 그런데 촬영 도중 감독이 오징어로 바꾸더니, 낙지를 거쳐 결국엔 문어까지 가더라구요. 한껏 예쁜 모습 상상하다 갑자기 안줏거리로 전락했죠.“

벌써 2년 전, 불과 사흘 동안의 기억이었지만, 그에게 당시 부산 백운포에서의 촬영은 엇그제 끝난 것마냥 생생하다. 특히 프루트 챈 감독과의 첫 만남은 잊을 수가 없다. “오디션 겸해서 커피숍에서 만났는데 인사도 나누기 전에 대뜸 화장실 가서 화장 지우고 오라고 하는 거예요. 화장이라고 해봤자 입술에 립스틱 바른 게 전부였는데….” 촬영에 돌입하자 ‘사납고, 무뚝뚝한’ 감독의 요구는 더욱 심해졌다. 생꽃게 다섯 마리를 계속해서 씹으라고 하질 않나(편집에선 잘려지만, 그때 경험으로 입에 못 대던 게장을 지금은 잘 먹는다), 수영금지구역인데다 한겨울 차디찬 바다에 빠뜨려놓고서 4시간 동안 허우적거리게 하질 않나. “그런데도 나중에 고생했다는 말 한마디 없어요.”

아무 말없이 디지털카메라를 가져다대는 프루트 챈의 연출방식도 초보연기자인 그를 곤혹스럽게 했다. “대사있는 연기는 처음이거든요. 그래서 연습 죽어라 해갔는데 현장에서 다 바꾸는 거예요. 감독의 스타일이라고 여겼지만, 저한텐 쥐약이었죠” 촬영 첫날, 눈빛만으로 “아, 감독이 나를 무지 싫어하는구나 싶었다”는 그는 굳이 ‘표정 관리, 대사 점검’ 하지 않고 몸과 마음 가는 대로 내맡겼다. 그 다음날, 프루트 챈으로부터 ‘처음부터 그렇게 하지’라는 칭찬을 얻어 듣긴 했지만 분노의 앙금이 남아선지, 올해 베니스영화제에서 만나 숙소에서 ‘369’ 게임을 하면서 내심 복수의 기회를 별렀는데, 정작 감독과 자신이 번갈아 걸려서 아쉽게 무산됐다고.

그녀가 털어놓는 배우 입문의 계기는 다소 엉뚱하다. “그냥 부산을 한번 떠나보고 싶었다”는 것이 전부다. 서울구경 하는 셈치고 탤런트 지망생인 친구 따라 상경했던 96년. 모 방송사 탤런트 시험에 심심풀이로 원서를 냈는데 덜컥 붙었다. 연기에의 욕심을 싹틔운 것도 비로소 이때다. 하지만, 설익은 꿈은 이내 묵살됐다. 대사 한마디 없는 단역을 위해 10시간 이상씩 대기하거나 뮤직비디오에 살짝 얼굴을 내비치는 것만으로 배우의 길을 반대하는 엄한 아버지를 설득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활동을 중단하고 낙향, 동의공대 전산과를 졸업해야 했다. “<화장실…>은 그래서 각별해요.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해준 영화니까.” 하지만 개봉이 1년 넘게 늦추어지면서 활동 재개 시점도 늦춰졌다. “시작치곤 너무 늦지 않냐구요 아직, 괜찮아요. 제 얼굴이 동안이잖아요.” 오랜 휴지기로 인한 조바심 같은 것은 전혀 없다는 그는 대신 물끄러미 시간을 흘려보내야 했던 그때를 벌충하기 위해서 더욱 적극적이 됐다며, 결과야 어쨌든 오디션 보러 다니는 요즘이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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