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개봉하는 스릴러 영화 에는 눈길을 붙잡는 주연배우가 하나 있다. <줄리엣의 남자> 등 몇편의 드라마에 출연하긴 했어도 그리 친숙한 얼굴은 아니었던 지진희(32)씨가 바로 그다. 그가 맡은 강 형사는 동물적 감각으로 수사를 벌이는 ‘무대뽀’ 스타일이다. 하지만 어머니가 원하지 않았던 자식으로 태어난 아픔을 갖고 있다. 강함과 아픔을 갖춘 복잡한 캐릭터는 ‘영화 신인’으로선 소화해내기 쉽지 않지만, 그로선 그 만큼 인상적인 데뷔를 한 셈이다.
“처음 <살인비가>라는 제목의 시나리오일 땐 에서 초반 잠깐 나오는 한 형사가 주인공이었어요. 시나리오에 반해 한 형사만 생각해왔는데 촬영 한달 전 이야기가 강 형사 중심으로 완전히 바뀌었어요.” 지적이고 논리적인 한 형사에서 전혀 성격이 다른 강 형사로 배역이 바뀌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난해 크리스마스부터 올 6월말까지 7개월간 부산에 머물며 그는 강형사의 ‘아픔’에 젖어들었다.
“선악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영화라는 점이 매력적입니다. 영화가 끝나도 그래, 저 범인 나쁜 놈! 이런 감정보다는 저사람이 범인이었구나, 그랬구나… 그런 연민과 감정적 동요를 주는 영화죠.” 끊임없이 관객에게 ‘머리를 쓰도록’하는 영화라는 점도 쉽고 웃기는 영화들 틈에서 매력이었다고 한다.
젊은 청춘들이 스크린을 휩쓰는 요즘, 32살짜리의 데뷔라니 아무래도 늦은 감이 있다.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뒤 편집쪽 일을 하던 그는 제품 광고사진을 찍는 사진작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우연히 만난 매니저의 연기섭외가 계속 들어왔지만 “연기란 외계인처럼 특별한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란 생각에 거부했다. “구제금융 사태 때였어요. 회사 여직원들이 다 잘리고 누군가 더 나가야 하는 상황이었죠. 돌아보니 모두 30대에 가정까지 있으니, 나갈 사람이 나밖에 없더라고요. 내가 나가겠다고 했죠.” 처음엔 딱 1년만 해보자 생각했던 연기의 길이었지만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며 “여기에 내 길이 있다”고 마음을 굳히게 되었다.
그렇다고 허황된 꿈에 사로잡힌 건 아니다. 그는 <이재수의 난>의 오디션인 줄 모르고 박광수 감독을 만나러 간 날, 연기를 해보라는 말에 몇번씩이나 “못 하겠다”고 버텼다고 했다. “정말 열심히 그 오디션을 위해 준비한 사람들에 비한다면 전 아무것도 준비된 게 없었거든요.” 그런 점에서 지씨는 자신을 냉정하게 판단하는 스타일이다. “배우란 참 유혹이 많은 일이에요. 주변에선 다 좋은 말만 해주니 왕자병·공주병 걸리기 십상이죠. 사회생활을 몇년 하고 나이 들어 이 일을 시작한 게 저한텐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곧 박광수 감독의 단편 인권영화 <차별>이 촬영에 들어가고 내년 1월부터는 방송 드라마 출연도 예정돼 있는 등, 지씨에겐 바쁜 스케줄이 기다리고 있다. 자신과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 명확한 기준을 갖고 있는 신인이란 점에서, 그의 앞길은 꽤 믿음직스러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