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도감]
김형태의 오!컬트 <헤드윅>
2002-12-18
록이여,거세당한 성난 1인치여

20세기 소년이었던 나는, 록음악을 사랑했다. 록이 나를 키워주었고 나의 생장점은 언제나 록의 비트로 세포분열을 하며 자라났었다. 20세기가 남긴 가장 위대한 문화적 유산. 록은 천박하며 위험하고, 생생하며 본능적이고, 진실하며 열정적이고, 단순하며 심오하였다. 세상의 모든 금지된 것들을 향한 출정가였다. 하지만 20세기는 끝났고 록의 시대도 가버렸다. 강렬한 기타 리프에 시대를 비판하는 가사를 열창한다는 것은 보기에도 민망한 올드패션일 뿐이다. 여자친구에게 호감을 얻기 위해서 전자기타를 사려는 소년들조차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의 록밴드는 일종의 연예흥행사업의 한 설정이고 패션일 뿐이다. 예쁘게 거세당한 록음악은 불만에 차 있지도 않고 무슨 경종을 울릴 만큼 너무 시끄럽게 연주하지도 않는다. 진정한 록의 시대는 갔다. 진실을 열창하던 시대는 가버렸다. 주먹을 높이 쳐들고 극한의 사우팅을 토해내던 시대는 갔다. 록의 남성적인 공격성은 싹둑 잘려버렸고 고작 1인치 정도 남은 돌출부는 공격적이라기보다 귀엽고 앙증맞다고나 해야 할까. 그렇다. 요즘의 록밴드는 귀엽고 앙증맞으며 누구에게나 예쁘게 보이려는 계집애처럼 굴고 있다. 이것들은 ‘성난 1인치’라고 부를 가치도 없는 것들이다. 만약 당신이 인기있는 록밴드를 만들고 싶다면 몇 가지 연출해야 할 부분이 있다. 우선 머리부터 짧게 자르고 얼굴은 긍정적이고도 진취적인 표정을 짓도록. 그리고 군대를 갓 제대한 건실한 청년 같은 말투로 사회적 안정감을 줄 것. 가사는 부정적인 단어들은 모두 피하고 꿋꿋한 사랑의 의지를 노래하거나 ‘복잡한 건 잊고 그냥 즐겨요’ 정도로 골치아프지 않게 해줄 것. 이처럼 밝고 건실하며 예쁘게 보이는 게 자신없으면 리드보컬을 차라리 여자에게 맡길 것. 그리고 연주하는 남자들은 조금은 내성적인 소년인 듯 다리는 모으고 고개는 살짝 숙인 채 모션이 너무 크지 않게 연주할 것. 간혹 반항적인 눈빛을 보이더라도 외로움을 잘 탈 것처럼 보일 것. 그리고 무엇보다 그 따위로 록밴드를 하려거든 거시기를 싹둑 잘라버릴 것.

나는 늦은 나이나마 20세기가 끝나기 전에 록밴드를 결성하고 짧은 시간이나마 무대에서 마음껏 소리쳐 노래부를 수 있었던 것을 내 인생의 행운으로 간직하고 있다. 20세기 소년이 청년이 되고 아저씨가 되면서도 전자기타를 팔아치우지 않고 기어이 자신의 밴드를 이루고 앨범도 내고 전국 투어를 다녔다는 사실은 가장 멋진 인생을 살았노라고 말할 수 있는 정도의 커다란 행운이다. 적어도 아직 20세기라면 말이다. 하지만 최근에 발표한 새 앨범에서 나는 록을 포기했다. 그 어떤 상업적 장르보다 역겨운 음악으로 전락한 록음악으로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하겠다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적 모순이었기 때문이다. 요즘엔 록밴드라는 게 달레마에 빠졌다. 열심히 하는 것도 창피하고 시대에 맞게 적절히 조절하는 것도 창피하다.

어쨌든 1인치 남은 성기로 뭘 해보겠다는 것은 창피할 따름이다. 영화 <헤드윅>의 미덕은 여기에 있다. 그 1인치 남은 록으로도 충분히 록의 힘, 록의 아름다움, 록의 태생, 록의 정체성을 모두 보여주고 있다. 아메리칸 드림에 속아서 어설프게 전환된 성 정체성과 스타덤에 속아서 거세당한 록의 외침이 바로 영화 <헤드윅>이다. 이데올로기로서의 동과 서, 인간의 정체성으로서의 남과 여, 음악의 원형과 복제의 갈등이 정교하게 하나의 내러티브로 엮어져 있으며 그것을 탁월한 록음악으로 승화시킨 영화이다. ‘Yankee go home, with me’라는, 진실을 관통하는 문장을 쓸 수 있는 존재는 로커밖에 없다. 하지만 이제는 영화에서나 만나는 록의 진실이여.

주: ‘20세기 소년’은 우라사와 나오키 원작의 만화 제목입니다.김형태/ 화가·황신혜밴드 www.hshba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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