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박중훈, “할리우드 진출 예고편 들고 왔습니다”
2002-12-31
글 : 김은형 (한겨레 esc 팀장)

“전세계를 향한 할리우드에서의 첫시사보다 한국시사회가 훨씬 더 긴장됩니다.” 2년전 한국배우 최초로 할리우드에 입성한다는 소식을 알렸던 박중훈이 출연작 <찰리의 진실>과 함께 돌아왔다.

“<찰리의 진실>은 박중훈을 배려한 영화가 아닙니다. 한국시장도 염두에 둔 영화이지, 한국시장만을 염두에 둔 영화는 아니구요. 이런 부분들이 한국관객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 지 촬영기간 중에도 많은 부담이 됐습니다.”

박중훈이 연기하는 이일상은 찰리가 일했던 특수부대의 동료. 처음에는 돈에 눈먼 악질 군인처럼 나오지만 뒤로 갈수록 굴곡 큰 반전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조나단 드미 감독이 저만 보면 눈이 하트 모양으로 변할 정도로 저를 좋아했어요. <인정사정 볼 것없다>의 열렬한 팬이기도 했구요. 그래서 원작에서는 중간에 죽는 것으로 끝나는 인물을 다시 살려내 나름대로 매력적인 캐릭터를 덧입혔죠.”

클라이맥스에서 박중훈과 마크 월버그가 파리 시내를 배경으로 벌이는 숨가쁜 추격전도 <인정사정…>의 추격장면을 빌려와 찍은 것이라고 한다. 원래 오사다였던 이름이 박중훈의 설득으로 이일상으로 바뀌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오사다는 드미 감독이 잘 가던 일식집 주방장의 이름이었고, 이일상은 작고한 박씨 부친의 이름과 <인정사정…>의 이명세 감독 성을 조합한 박중훈의 아이디어다. 박씨는 “개인 트레일러에 적혀있는 이일상이라는 이름을 매일 보면서 더욱 분발해 최선을 다해 연기할 수 있었다”고 한다.

마크 월버그, 팀 로빈스 등 헐리우드의 거물급 배우들과 처음으로 호흡을 맞춰본 것도 그에게는 특별한 경험이다. “마크 월버그의 개런티는 1700만불, 팀 로빈스의 개런티는 500만불 정도였고, 저는 32만5천불(국내 돈으로 약 4억원) 받았습니다. 할리우드에서 배우의 위치는 개런티가 정하는 것이라 처음에는 보이지 않는 상하관계같은 게 있었죠. 그렇지만 전혀 기죽지 않으니까 저를 보는 눈이 조금식 달라지는 듯했습니다. 특히 마크와는 촬영하는 5개월 내내 같이 다니다시피하면서 친하게 지냈습니다.”

<찰리의 진실>이후 박씨는 5개의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 시나리오를 받았다. 그 중 3개는 뻔한 캐릭터의 악역이라 거절했고, 2개는 이일상 정도의 비중을 가진 조역이라 거절했다. “한단계 업그레이드된 역이 아니라면 의미없다”는 게 거절의 이유다. 대신 <찰리의 진실>의 제작자인 피터 새러프가 시나리오를 준비중인 로맨틱코미디의 출연을 약속했다. 2천만불 정도의 아담한 예산으로 만들어지는 이 작품에서 박중훈은 백인여성과 사랑에 빠지는 동양남자를 연기하게 될 것이라고. “주윤발이 미국에 와서 <리플레이스먼트 킬러>를 출연하기까지 5년 걸렸습니다. <찰리의 진실>은 저의 할리우드 진출에 있어 좋은 예고편같은 작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관객 여러분도 여유를 갖고 제가 조금씩 성장해나가는 것을 지켜봐주셨으면 합니다.”

<찰리의 진실> 미국개봉 흥행은 기대못미쳐

파리의 부유한 미술품 중개상의 아내 레지나(탠디 뉴튼)는 잦은 출장으로 늘 집을 비우는 남편과의 결혼생활에 회의를 느낀다. 이혼을 결심하고 친구와 카리브해로 여행을 갖다온 레지나를 기다리는 것은 텅빈 아파트와 남편의 살해소식이다.

경찰은 그에게 남편이 찰리, 찰스, 샤를 등 여러 개의 이름과 국적, 신분으로 살아간 베일 속의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게다가 조슈아(마크 월버그), 바톨로뮤(팀 로빈스)를 비롯해 낯선 인물들이 차례로 레지나에게 접근해 찰리가 숨겼다는 6백만불의 행방을 추궁한다.

<양들의 침묵>을 연출했던 조나단 드미 감독의 <찰리의 진실>은 오드리 햅번이 주연했던 63년작 <샤레이드>를 리메이크한 영화다. 찰리가 일했던 특수부대 동료들이 하나씩 등장하면서 서로 다른 정보를 흘리고 레지나는 생명의 위협 속에서 퍼즐조각처럼 흩어진 찰리의 ‘진실’을 맞춰나간다. 드미는 긴장감 넘치는 원작에 유머를 첨가하고 왕가위의 감각적인 영상스타일로 세련된 옷을 입혔다. 그러나 시종 널뛰듯 흔들리는 카메라와 잦은 시간교차장면, 클래식에서 탱고, 록까지 정신없이 쏟아지는 음악들로 인해 영화는 자주 리듬을 잃고 산만해진다. 1억2천만불의 제작규모에 비해 미국개봉 첫주 1천만불에 불과한 수익을 내 한국배우의 할리우드 첫 입성작으로는 맥빠지는 결과를 보여줬다. 다음달 10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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