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영화 <천년호>의 김혜리·김효진
2003-01-14

11일 오후 영화 <천년호(千年湖)>(제작 한맥영화)의 촬영이 한창인 중국 저장성(浙江省) 항저우(杭州) 근교의 린안(臨安)호텔과 인근의 야외촬영장에서 여주인공인 김효진(20)과 김혜리(34)를 만났다.

연령으로 보나 연기경력을 따져도 까마득한 선후배지만 연기에 임하는 자세만큼은 서로 양보하는 기미가 없다. 신인인 김효진은 물론 4번째 영화에 도전하는 김혜리에게는 스크린 데뷔작이나 마찬가지인데다 주인공 비하랑(정준호)을 사이에 두고 사랑다툼을 벌이는 역할이기 때문이다.

“다시 신인으로 데뷔하는 기분이에요. 사극은 한동안 안하겠다고 머리를 싹둑 잘랐는데 시나리오의 매력에 이끌려 다시 1천년 전으로 돌아가게 됐어요. 그동안 TV 사극에서 주로 보여준 인고(忍苦)의 여인상과는 달리 카리스마를 한껏 풍기는 역할이거든요.”(김혜리)

“첫 영화로 사극을 택하게 될지는 정말 몰랐어요. 그것도 당초 캐스팅된 김민정씨의 부상 때문에 뒤늦게 합류하다보니 부담이 훨씬 컸지요. 정준호 오빠와 김혜리 언니, 그리고 이광훈 감독님을 비롯한 스태프들의 도움으로 그런대로 적응하고 있어요.”(김효진)

지난해 10월 10일부터 중국에서 촬영을 시작한 <천년호>는 9세기 말 신라 진성여왕 시대를 배경으로 비극적인 삼각사랑을 그려낸 무협 팬터지 멜로물. 김효진은 신라 장군 비하랑과 사랑에 빠졌다가 죽음을 당해 천년 전 원혼이 깃든 요귀로 부활하는 자운비 역을 맡고, 김혜리는 비하랑을 독차지하려는 질투심으로 자운비를 죽음으로 내모는 진성여왕으로 등장한다.

김혜리는 사극 전문배우답게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기 때문에 신라 국운이 다하던 시기의 진성여왕에 대해 좋지 않은 측면을 부각시켰을 것”이라고 말한 뒤 “한 나라을 책임지는 왕이면서도 한 남자를 사랑하는 여인으로서의 고민을 어떻게 잘 그려낼 수 있을지 아직도 마음이 무겁다”고 밝혔다.

김효진은 “청순한 산골 처녀에서 무서운 요귀로 변해 정반대의 연기를 보여줘야 하는 설정이 초보 연기자인 저에게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마저 든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러나 제작진이 가장 걱정한 와이어 액션 장면에서는 오히려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완벽한 동작을 보여줘 중국측 무술 스태프들로부터도 갈채를 받았다.

김혜리는 베테랑 연기자답지 않게 베드신 대목에서 신인처럼 바짝 긴장해 제작진을 당황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이날 따라 김혜리의 남자친구가 촬영장을 방문하는 바람에 김형준 한맥영화 대표가 다른 핑계를 대며 격리시키느라 애를 먹었다.

“정준호씨가 은근히 러브신을 즐기는 것 같아 저도 프로답게 하려고 했는데 너무 떨리더군요. 준호씨나 감독님은 하던 대로 해보라고 주문하지만 안해본 걸 어떻게 하던 대로 하겠느냐구요. 키스신 때도 나는 양치질에 가그린까지 만반의 준비를 갖추는 데 반해 준호씨는 일부러 쥐포와 멸치를 씹고 나오더라구요.”

김효진도 “이번처럼 리얼한 키스신은 처음이어서 당황했으나 준호 오빠가 배우라면 반드시 거쳐가야 할 과정'이라며 용기를 북돋워줘 눈 딱 감고 했지요”라고 수줍게 털어놓았다.

해외 로케의 가장 큰 어려움 가운데 하나는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 것. 그러나 <천년호>의 제작진들은 김혜리와 김효진 덕분에 입이 행복했다고 한다. 김혜리의 방에서는 연일 김치찌개와 부대찌개 등 한국음식 파티가 벌어져 ‘김혜리식당’으로 불렸고 김효진은 한국에 들어갔다 나올 때마다 수십박스씩 과자를 공수해왔다.

88년 미스코리아 선으로 뽑히면서 연예계에 데뷔한 김혜리는 92년 「이별없는 아침」으로 연기력을 인정받은 데 이어 95년부터 「조광조」 「용의 눈물」「태조 왕건」 등 사극에 주로 출연해왔으며 「한밤의 TV연예」를 비롯한 각종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김효진은 휴대전화 CF로 김민희와 함께 스타덤에 오른 신세대의 아이콘. 「RNA」 「메디컬센터」 「@골뱅이」 「우리집」 등의 청춘 드라마에도 꾸준히 얼굴을 내밀었다.

김혜리가 TV 드라마뿐 아니라 영화에서도 사극 전문배우로서의 성가를 재확인할 수 있을지, 김효진이 CF 스타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비로소 연기자로 대접받을 수 있을지는 올해 7월 극장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항저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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