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흑백 초월한 우아함,<찰리의 진실>의 탠디 뉴튼
2003-01-15
글 : 박은영

‘검은색이 아름답다’는 말이 설득력을 얻는 데 걸린 시간만큼은 아니지만, 탠디 뉴튼이 배우로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투자한 세월도 짧진 않다. 십년 동안 스무편에 가까운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하고도 대중과 가까워지지 못했던 탠디 뉴튼은 그러나, 사람들이 믿는 것처럼 <미션 임파서블2>가 자신의 커리어에 큰 획을 그었다고 생각진 않는다. 그저 감독(오우삼)의 오랜 팬이라는, 상대 배우(톰 크루즈)가 편한 친구라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소박한 이유로 선택한 출연작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세상이 주목했을 때 탠디 뉴튼은 이미 그 커피색 피부처럼 보기 좋게 무르익고 그은 배우였다.

탠디 뉴튼을 단련시킨 것은 실패와 좌절의 기억만은 아니다. 아프리카 어떤 부족의 공주였던 어머니와 영국 의사인 아버지 사이에서 ‘사랑받는 이’(Beloved)라는 이름의 아기로 태어날 때부터 그의 혈관엔 남다른 여유와 자신감이 흐르고 있었던가보다. 탠디 뉴튼은 인생의 고비마다 추락 대신 비상을 꿈꾸고 실현하는, 낙천적인 에너지를 발했다. 허리를 다쳐 무용을 그만뒀을 때 연기를 시작했고, 영국 악센트가 강해 캐스팅이 안 될 때 인류학도로 전향했으며, 결과적으로 그 전공 덕에 문화와 배경이 다른 다양한 캐릭터를 품어 안을 수 있게 됐다. 조너선 드미의 <비러비드>, 베르톨루치의 <하나의 선택>, 오우삼의 <미션 임파서블2>, 다시 드미의 <찰리의 진실>까지. 초기작 몇편에 연달아 흑인 노예로 출연한 예도 있지만, 탠디 뉴튼은 그 모두가 ‘다른 작품’에 ‘다른 역할’이었음을 강조한다. “인종 차별 겪어본 적 없다. 내가 흑인이라는 건, 배우로서 장점이다. 남과 다르다는 건, 그래서 눈에 띈다는 건, 좋은 일 아닌가.”

탠디 뉴튼은 이국적이고 모던한 외모에서, 묘하게도 고전적인 매력을 풍긴다. 신인 시절 시대극을 전전했던 경력은 접어두고라도, <미션 임파서블2>에서 톰 크루즈의 연인 역으로 잉그리드 버그만의 이미지를 찾던 오우삼이, <샤레이드>의 리메이크 <찰리의 진실>에 과거 오드리 헵번의 역할을 소화할 여배우를 찾던 조너선 드미가, 탠디 뉴튼을 만났다는 건 우연이 아니다. <찰리의 진실>에서 남편의 돌연한 죽음 뒤에 낯선 이들의 협박과 회유에 시달리는 미망인을 연기하던 탠디 뉴튼의 우아한 목선, 나른한 몸짓, 영국식 악센트를 들어 ’리틀 오드리 헵번’이라 칭송한 미국 언론의 태도도 다르지 않다. 할리우드는 탠디 뉴튼에게서 사랑스럽고 고상하면서 강인하기도 했던 흑백 시대의 히로인들을 추억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찰리의 진실> 리뷰의 절반 가까이 탠디 뉴튼을 칭찬하는 데 할애한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오드리 헵번 같은 배우가 다시 나올 수 없다고 한다면, 탠디 뉴튼 같은 배우도 다시 나올 수 없을 것”이라고 확언한다. 여러 캐릭터가 그 곁을 배회하지만, 영화의 중심에 홀로 선 그녀는 당당한 존재감으로 빛나는 ‘스타’라는 것이다. 짐작하건대, 이런 극찬이 탠디 뉴튼을 감동시킬 것 같진 않다. <미녀 삼총사> 대신 소박한 인디영화를 택한, 그리고 두살배기 딸을 위해 느슨하게 살고 있는, 그 탠디 뉴튼이니 말이다. 예나 지금이나 그는 그저 마음 맞는 작품과의 만남을 기다리는, 진득한, 그리고 쿨한 배우일 뿐이다.

사진제공 GAM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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