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극장에 가서 볼 영화를 결정하는 데 아내와 의견이 다른 경우가 생기게 마련이다. 극장에서 볼 수 있는 영화 수가 제한적이다보니 최대한 둘 다 보고 싶어하는 영화를 골라보게 되는데, 그렇게 의견이 안 맞는 경우엔 참 난감하다. 대체로 그런 문제를 일으키는 영화들은 한국영화를 포함한 비(非)할리우드영화들이다. 예를 들어 난 <연애소설>은 안 봐도 될 것 같은데 아내는 보자고 하고, 내가 보고 싶어하는 <광복절특사>는 아내가 마다하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우리 두 사람이 의견 조율이 안 되는 경우에는 정말 의외의 영화들이 기회(?)를 잡는다는 것이다. 대부분 ‘차라리 상대방이 보고 싶어하던 걸 볼걸’ 하고 후회를 하게 되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런 비슷한 상황을 될 가능성이 짙었던 영화 <피아니스트>에 대해서는 이상하게 처음부터 공감이 생겼다. 그냥 무심결에 “다음 영화는 <피아니스트>가 어때”라고 했는데, 돌아온 반응이 “그래, 좋아. 안 그래도 보고 싶었어”였던 것. 문제는 그렇게 완벽하게 느껴졌던 대화가, 사실은 서로 딴소리를 하는 것이었다는 사실이다. 내가 말한 <피아니스트>는 로만 폴란스키의 영화였고, 아내가 말한 <피아니스트>는 미하엘 하네케의 영화였던 것. 물론 둘 다 또 다른 <피아니스트>라는 영화가 있다는 사실을 알기는 했지만, ‘설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결국 사태의 전모가 드러난 순간, 둘은 한동안 웃음을 그치지 못했다.
그렇게 독특한 기억을 남긴 로만 폴란스키의 영화 <피아니스트>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기에는 도무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드라마틱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 드라마의 주인공인 슬라디슬라프 스필만의 실제 삶이, 영화의 개봉과 함께 화제가 된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스필만의 그런 인생역정의 시작은 1911년 그의 정신적인 스승 쇼팽의 고향이기도 한 폴란드에서 태어나는 데서 시작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를 연주한 그가 본격적인 피아니스트의 길을 걸은 것은, 1931년 베를린 음악아카데미에 입학하면서부터다. 그곳에서 작곡가로도 실력을 인정받은 그가 폴란드로 돌아온 것은 1933년. 그뒤 수많은 피아노 소곡들과 교향곡들은 물론 영화음악과 대중음악까지 작곡하면서 그는 폴란드에서 유명 음악가가 되었고, 25살 되던 1935년에는 바르샤바에 있는 국영라디오 방송에서 일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대중적인 음악가가 되었다.
하지만 그가 빠른 성공을 통해 폴란드에서 가장 주목받는 음악가로 인정받으며 29살이 되던 1939년,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쇼팽을 연주하고 있던 그의 눈앞에 독일군의 포탄이 떨어지면서 그의 드라마틱한 인생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뒤 영화에서 그려진 것처럼 전쟁의 한복판에서 살아남은 그는, 1945년 자신의 경험을 담은 회고록 <Death of City>를 집필한다. 하지만 이듬해 출간될 예정이던 그 책은 공산당 정부에 의해 출판을 금지당하고 만다. 이유는 책의 내용이 폴란드인의 패배를 담고 있어 공산당 정부의 비전에 반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전 국가적인 유명세를 타고 있던 그에게 공산당 정부는 국영방송의 음악감독 자리를 내주고, 자유로운 연주활동을 보장해주었다. 그뒤부터 약 18년간 일을 하면서, 동시에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연주활동을 활발히 펼쳤다.
전후 그의 활동에서 특이한 점은 공산당 정부의 요청에 따라 대중을 위한 작품들을 작곡해야 했다는 것. 그런 이유로 그가 작곡한 군중음악과 어린이들을 위한 노래들은 무려 300곡이 넘었는데, 그 대부분이 지금까지 폴란드 국민들의 애창곡이 되어 있다. 그렇게 음악가로서의 활발한 활동에만 전념하던 그를 보고 자란 아들 안드레이는 한 인터뷰에서 “아버지는 절대로 전쟁 당시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것은 당시 유대계 폴란드인들 사이에서는 아주 전형적인 것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던 그가 출금되었던 회고록 원고에 그를 살려주고 1952년 사망한 독일군 장교 호젠펠트의 일기를 더한 <The Pianist>를 출간하게 된 것은, 우연히 발견한 <Death of City> 원고에서 아버지 세대의 고통을 깨달은 아들의 노력에 의한 것이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출간된 책은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스필만은 말년을 자신의 책과 음악에 대한 전세계인들의 관심 속에 보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의 촬영 개시를 몇달 앞둔 2000년 6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스필만의 죽음으로 그의 피아노 연주를 삽입할 수 없게 된 폴란스키는, 폴란드 출신의 유명한 피아니스트로 <쇼팽의 푸른 노트>에서 쇼팽 역을 맡아 연기한 경험이 있는 자누스 올레니작에게 연주를 맡겼다. 관객 입장에서 보면 스필만의 연주를 직접 듣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쇼팽에서 시작되어 스필만까지 이어진 폴란드 피아니스트의 감수성을 올레니작이 잘 살려냈다는 평가가 조금은 위안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철민/ 인터넷 칼럼니스트 chulmin@hipop.com
<피아니스트> 공식 홈페이지 : www.thepianistmovie.com
<피아니스트> 한글 공식 홈페이지 : www.the-pianist.co.kr
슬라디슬라프 스필만 공식 홈페이지 : www.szpilma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