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리 길리엄의 실패담 담은 다큐 <로스트 인 라 만차> 개봉누구나 길을 걷다 드라마나 영화 촬영현장을 마주치면 한번쯤 발걸음을 멈추고, 어깨 너머로 구경해본 적 있을 것이다. 꼼꼼한 사전준비에도 아랑곳없이 어디선가 밀려오는 검은 비구름이라든지, 시간이 돼도 나타나지 않는 배우들 따위의 예측 불가능한 사건들로 촬영현장은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게 마련이다. 영화감독이라면 꿈에서도 겪고 싶지 않은, 영화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나쁜 일들이 일어나고야마는 그 악몽의 순간을 담은 다큐멘터리, <로스트 인 라 만차>(Lost in La Mancha)가 지난 1월30일 뉴욕과 LA에서 개봉했다.
다큐멘터리 속, 불운의 영화감독은 <브라질> 로 잘 알려진 괴짜감독 테리 길리엄. 의 메이킹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호평을 받았던 키스 풀튼과 루이스 페페, 두 다큐멘터리 작가는 테리 길리엄의 신작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The Man Who killed Don Quixote)의 메이킹 다큐멘터리를 만들 계획으로 영화 제작현장을 촬영하기 시작했으나, 뜻하지 않은 테리 길리엄의 불운으로 대신 드라마틱한 무대 뒤 비화를 찍어내는 행운을 얻었다. 테리 길리엄이 10년을 계획해온 야심작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는 촬영을 시작하자마자 예정에 없던 홍수에 세트와 장비가 떠내려가질 않나, 의사소통 안 되는 다국적 스탭들이 애를 먹이지 않나, 한적한 곳이라 선택했던 촬영장소는 알고보니 나토(Nato)의 폭격 훈련지. 훈련 안 된 말들은 이리저리 날뛰고, 급기야 주연배우가 시름시름 아프기 시작하더니, 결국 촬영 시작 7일 만에 영화제작이 엎어지고야 만다. 무엇보다 이 모든 재앙들은 결국 할리우드를 등에 업지 않은 빠듯한 예산이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그의 영화 속에서나 일어날 법한 기괴하고 우스꽝스러운 이 실제상황에 대한 기록, <로스트 인 라 만차>는 영화사에서 보기 드물게 완성되지 못한 영화에 대한 다큐멘터리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스토리보드, 의상들, 세트 그리고 20여분 남직한 실제 영화 촬영분들을 보면, 돈키호테의 공상이 테리 길리엄의 기발한 상상력을 통해 유쾌하게 부활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 <로스트 인 라 만차>는 가 “모든 창조적인 작업 뒤에 숨은 고통들의 생생한 현장 보고서”라고 말한 것처럼, ‘영화 만들기’의 이면에서 오고가는 현실적인 문제들과 분투하는 이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스튜디오의 간섭없이 빠듯한 예산과 만만치 않은 원작으로 스펙타클한 영화적 상상력을 구현하려는 영화 감독 테리 길리엄의 분투는 마치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를 닮았다. <로스트 인 라 만차>가 전해준 불꺼진 무대 뒤 소식에도 불구하고, 테리 길리엄이 언젠가 풍차를 쓰러뜨리고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를 들고 귀환하는 게 기다려지는 건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