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한민국에서 유준상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신세대 와이프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봉강철(<여우와 솜사탕>)부터 민초들의 고충을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자애로운 지도자 박문수(<어사 박문수>)까지 TV 속 그의 분신들이 유난히 친근했던 까닭이다. 나이 지긋한 어른들은 이웃집 아이 대하듯 “고생이 많네” 하며 등을 다독이고, 꼬마들은 “하이마트다”를 연발하며 아는 척을 해온다니, 전 국민적 관심과 애정을 한몸에 받고 있는 이즈음이다. 개인적인 경사도 앞두고 있다. 유준상은 오는 삼일절에 아리따운 후배 홍은희를 아내로 맞아, 만세 삼창을 외치게 된다. 입이 귀에 걸려도 모자랄 판이다.
그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네요. 가장 큰 변화라면, 제가 결혼을 하게 됐다는 거죠. 저, 여자 못 만날 줄 알았거든요. (웃음) <여우와 솜사탕>으로 많이 알려졌다는 것도 의미가 크고요. 뮤지컬(<더 플레이>) 공연할 때도, 그래서 많이들 보러 와 주셨어요. 시작할 때 마음을 잊지 않으려고 애썼는데, 어때요, 저, 지난번 만났을 때랑 지금이랑 달라요?
1999년 겨울, <텔미썸딩>으로 영화 데뷔한 유준상을 서둘러 만났더랬다. <남자대탐험> <베스트극장-네발 자전거> <백야 3.98> <안녕 내 사랑> 등을 기억하고 있던 우린 그가 영화에 발을 들였다는 소식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좋은 배우를 하나 더 확보했다는 기쁨에서였다. 그러나 영화로 옮겨온 유준상의 행보는 그다지 기운차지 않았다. <텔미썸딩>과 <가위>. 두번 다 범인추적 과정에 혼선을 주는 캐릭터로 출연했던 그는, 불편해 보였다. 딱히 뭐가 문제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냥 맞지 않는 옷을 걸치고 있는 것 같은, 그런 모양새였다.
지금 하라면 잘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최선을 다한다는 데도 그 안에서 차이가 있거든요. 마음이 편해야 몰입할 수 있는 건데, 그땐 해내야 한다는 강박이 심했어요. 더 아쉬운 건 그 인물의 행동에 어떤 기승전결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거죠. 역할 비중상 편집과정에서 잘려나가기도 하고. 지금이 좋은 건, 캐릭터의 기승전결을 설명할 수 있게 됐다는 거겠죠.
유준상이 물을 만난 건, TV로 건너가 그가 스스로 밝힌 장점인 ‘평범함’의 미덕이 두드러지는 역할들과 조우한 뒤부터였다. 몇편의 가족드라마에서 그는 가족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적당히 모자라고 부족해서 ‘인간미’가 느껴지는, 그런 인물이 되어 나타났다.
누군가는 그런 그를 일컬어 최근 들어 위에서 눌리고 밑에서 치이는 386세대의 애환을 가장 잘 그려낸 연기자라고 평했다. 오래지 않아, 특정 성별과 연령대에 치우침 없는 불특정 다수의 대중이 유준상의 연기에 공감하고 위안을 얻는다고 고백해왔다.
바로 옆에서 살아 숨쉬고 있는 것 같은, 그런 인물을 만들려고 노력해요. 보시는 분들이 공감할 수 있어야겠죠. 예컨대 사악한 인물에 대해서도, 나도 저럴 것 같다, 나도 저런 적 있었지, 하는 공감을 끌어내고 싶어요. 장르나 비중에 관계없이 작품 속에 제대로 그려진 인물이면, 그런 묘사가 가능할 것 같아요.
이제 유준상이 조심스런 발걸음으로 스크린에 돌아온다. 홍수환이 챔피언을 먹던 ‘감격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쇼쇼쇼>에서 그는 칵테일바를 열어 성공해 보려는 청춘들의 리더 산해를 연기한다. 허풍기도 있고, 재기 발랄하던 기존의 캐릭터와 달리 시대의 슬픔을 품고 있는, 조금은 거칠고 묵직한 역할이다. 오랜만에 하는 영화인데다 첫 주연작이라, 영화에 거는 유준상의 기대는 남다르다. 웨딩 촬영에 따라붙은 취재진에게 줄곧 영화홍보만 해댔다는(그것도 자진해서) 자랑 아닌 자랑도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바텐더 역할을 꼭 한번 해보고 싶었어요. 바텐더에 관한 뮤지컬을 할 뻔한 적이 있었거든요. 인연인지 영화에서 맡게 되네요. 그리고 저는 1970년대를 아주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거든요. 암울한 시대였지만, 사람들은 밝았던 것 같아요. 잊혀져선 안 될 어떤 순수함과 따뜻함이 있었구요. 보는 분들 마음에 그런 순수함과 따뜻함이 물들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유준상은 예나 지금이나 TV, 영화, 연극, 어느 한곳에 자신의 활동을 한정지을 생각이 없다. 자신의 이름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팬클럽 ‘꿈의 동반’에서 에너지와 자극을 동시에 얻는다는 유준상은 그 든든한 ‘빽’ 때문인지 일말의 조바심도 내보이지 않았다. 대신 자신이 이미 삼십대 중반에 들어섰으니, 이제 마음을 다스려가면서, 자유로워지고 싶다고만 소망했다. 그리고 뮤지컬에서 자신이 읊었던 대사를 도인처럼 툭 던지고 사라졌다. “인생, 뭐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