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나는 백인 쓰레기야,제길,당신도 엿먹어!에미넴 Eminem
2003-03-05
글 : 황혜림

에미넴이 어떤 사람인가를 입 아프게 늘어놓는 것은 사족일지 모르겠다. 그의 음악에 귀기울인 적 있다면, 짧은 영어로나마 그 맹렬하게 쏟아지는 언어의 폭포수가 도대체 무슨 뜻인지 끙끙댄 적이 있다면, 잡고도 남았을 테니까. 또는 그럴 관심이 없었다면, 미국 사회의 밑바닥을 헤매던 자신을 토해놓은 음악, 아무래도 18禁 딱지를 면하기 어려울 만큼 거칠고 살벌한 랩으로 드러난 그의 삶을 새삼 이해하고 싶지 않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Fuck’과 ‘damn’과 ‘bitch’가 난무하는 그의 랩은 격하고, 도발적이며, 일그러진 웃음을 띠고 있다. 가진 것 없고 배우지 못해서 빈곤과 환멸의 진창을 뒹굴던 “백인 쓰레기”의 분노와 냉소를 퍼붓는 데 성역은 없다. 부모도, 학교도, 사회도, 꿈과 욕망의 대리인 같은 스타도, 심지어 그저 꼴보기 싫은 모든 존재들도.

“내 인생의 99%를 난 속고 살았지/ 엄마가 나보다 더 약을 많이 한다는 걸 이제야 알았어(제길!)/ (중략) 방탄조끼를 입고 내 머릴 쏴버릴 거야(빵!)/ 난 꼭지가 돌아 미쳤어(아악!)/ 어쨌든 우리 아빠를 보거든(응?)/ 내가 이 꿈에서 목을 따버릴 거라고 전해 줘.” <Slim Shady LP> 중 <My Name Is>

에미넴은 마셜 매더스 3세(Marshall Mathers III)라는 본명의 이니셜을 딴 M&M에서 나온 이름. “유명해지기 전의 시절로 되돌아가게 했다”는 <8마일>과 그의 삶은 닮은 구석이 많다. 아버지가 집을 나간 뒤, 에미넴은 어머니와 함께 디트로이트 근교와 시내의 허름한 트레일러를 전전하며 살았다. 약물에 찌든 어머니 아래 일찌감치 생계를 고민해야 했고, 15살 때 학교를 그만뒀다. 지리멸렬한 일상 속에서 그가 찾은 유일한 낙은 랩 음악.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힙합 클럽을 드나들었고, 틈만 나면 랩 가사를 끼적이곤 했다. 뉴 잭스, 영화 속의 ‘퓨쳐’처럼 그의 음악을 독려해준 친구 프루프를 만난 소울 인텐트, D12 등 다양한 그룹 활동도 했지만, 딸 헤일리가 태어나자 먹고살기 위해 잠시 음악을 쉬어야 했다.

“윌 스미스는 음반을 팔아먹기 위해 랩을 하면서 욕지거릴 하지 않았지/ 뭐 나는 해, 그러니 걔도 엿먹고 당신도 엿먹어!/ 빌어먹을 그래미 따위에 내가 신경이나 쓸 것 같아?/ 니들 평론가들 중 절반은 날 소화하기는커녕 배겨내지도 못하는걸.” <Marshall Mathers> 중 <Real Slim Shady>

이때의 좌절과 갈증은 이후 그의 음악에서 생생한 분노와 독설로 살아난다. 96년 중소 레이블에서 낸 데뷔음반 <Infinite>는 당시의 나스 같은 래퍼들에 비해 냉담한 반응을 얻었지만, 역전의 기회는 빨리 왔다. 이듬해 LA의 랩 올림픽에서 수상하면서 그의 데모가 음반사 인터스코프의 주목을 받고, 갱스터 랩의 대부 닥터 드레의 귀에 이른 것. 흑인들의 힙합세계에 뛰어든 이 흰 피부의 이방인의 재능을 알아본 드레의 지원으로 99년에 나온 <Slim Shady LP>는, 에미넴을 300만장 이상 팔린 스타로 만들었다. 무책임한 부모에 대한 증오, 기성의 질서를 통렬하게 공박하는 조소, 인간 취급도 못 받는 백인 낙오자가 세상을 향해 내뱉는 적나라한 욕설은 그 자신은 물론 젊은 청중에게 배설의 해방구와 같았다. 2000년작 <Marshall Mathers LP>는 발매 첫주에 200만장 가까이 팔려나갔고, 독설과 더불어 외설적인 욕지거리, 성차별적이고 동성애 혐오적인 표현으로 무수한 논쟁의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종종 화자로 등장하곤 하는 가상인물 슬림 셰이디처럼, 에미넴의 음악에는 폭력적인 불경함과 삐딱한 유머, 날선 현실비판이 공존한다. 랩이란 장르에서 흔히 보듯 폭력과 마약, 섹스를 포장한 공격적인 마초의 이미지로 과장된 걸까, 지미가 공장의 급식 트럭 앞에서 여성과 동성애자의 편에 서는 <8마일>의 묘사를 영악하다고 빈정대는 언론이 예리한 걸까. 지난해 발매한 <Eminem Show>까지, 에미넴이 자신의 삶에 솔직한 음악으로 위선적인 현실의 일면을 까발리는, “랩 장르를 빛낸 가장 논쟁적인 래퍼 중 하나”(<올 뮤직 가이드>)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블레어 윗치>에 대한 코믹패러디 <힙합 마녀>와 동료 래퍼들과 함께한 코미디 <더 워시>를 재미삼아 거쳐 이른 <8마일>. 그저 “에미넴 영화”라면 하지 않았을 거라며, 비루한 삶의 틈바구니에서 래퍼의 꿈을 키우는 그의 연기는 진솔하다. 배우로도 남게 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영화를 하면서도 음악을 할 수 있다는 게 가장 좋았다”는 그가 음악적 도발을 멈출 기색은 없다. 즐기거나 무시하거나.

사진제공 유니버설 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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