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영화]
나도 저런 거 만들고 말 테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2003-03-12

나는 지난해 여름 극장에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보면서 그동안 내 안에 감추어져 있던 새로운 바람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건 ‘나도 저런 거 만들어보고 싶다’라는 단순한 또는 원대한 포부….

아주 오래 전부터 미미하게 나에게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다. 그러나 일단은 배우들이 나오는 극장용 극영화를 한편 만들어 보고 싶었기 때문에 그 꿈을 잠시 접어두었었다. 그리고 애니메이션이 내 전공분야도 아니고 내가 그림을 잘 그리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수십년(음…) 동안 그 바람을 잊고 지내고 있었다.

몇몇 친구들에게 애니메이션을 해보면 어떨까, 얘기를 하면 친구들은 이런 조언을 해주었다. “글쎄 그게 영화랑 다르기도 하고 또 비슷하기도 하다고 볼 수 있지….” 그래서 내가 할 수 있을 거 같아? 아님 하지 말라는 얘기야? 그러면 친구들은 이런 대답을 한다. “감히 내가 어떻게 네 인생에 대해 그같은 말을 할 수 있겠니.” 나는 분명히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보면서 나도 저런 거 만들어 보고 싶다는 느낌을 가졌다. 아주 강렬하게…. 내가 팬클럽 회장으로 있는 숯검댕 까만먼지님들의 식량이 사실은 별사탕이었음을 알게 되었을때, 네개의 팔이 달린 가마할아버지가 굿럭을 특유의 일본식 영어로 외쳤을 때, 나는 나도 저런 거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엄마 유바바보다 커다란 아기 보우가 바다를 가르는 기차를 타고 센과 여행을 할 때 쥐로 변해 센의 어깨에 앉을 수 있을 만큼 아무렇지 않게 작아져 있을 때, 가오나시가 비오는 뜰에서 집안으로 으슬으슬 검은 안개처럼 들어와 센의 손 가득 금조각을 내밀려 단발마의 소리를 낼 때, 나는 나도 저런 거 만들고야 말겠다는 결심을 서서히 굳히고 있었다.

이렇듯 미야자키 하야오의 집요한 관찰이 주는 장면의 디테일과 애니메이션이 가진 기이한 표현력의 결합은 동공을 확대시키다가 얼굴에 미소를 머무르게 한다. 특히나 가오나시의 식욕의 표현강도는 감히 실사영화는 꿈도 못 꿀, 애니메이션의 진경을 보여준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다 보고 극장을 나왔을 때 나는 두 주먹을 꼭 쥐고 이를 악물고 있었다. 나도 저런 거 꼭 만들고 말 테다. 뿌드득(이갈리는 소리임!!)

애니메이션을 언제 어떻게 만들게 될지는 아직 기약할 수 없는 단계다. 그러나 언젠가는 그것이 1분짜리건 100분짜리건 그렇게 차츰차츰 시도해보고 싶다. 가끔은 뭐 하나라도 제대로 해!!라는 내적인 압력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분명히 애니메이션 한편을 만들게 되었을 때 소설가나 요리사가 되고 싶다고 느끼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런 나를 정당화하기 위해 책 한 구절을 인용해본다.

그들은 언제나 ‘하나의’ 삶을 꿈꿔왔습니다. 즉 ‘하나의’ 사랑과 ‘하나의’ 직업과 ‘하나의’ 가족과 ‘하나의’ 거주공간이 있는 ‘하나의’ 삶을 꿈꿔왔습니다…(중략)… 그들이 앞으로 살아갈 세계는 ‘여러 개의’ 삶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여러 개의’ 사랑과 ‘여러 개의’ 직업을 겪어야함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브시몽 <감정의 표류>)

정재은/ 영화감독·<고양이를 부탁해> 연출, 현재 두 번째 영화 <태풍태양> 준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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