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할리우드 명 프로듀서 3인전(傳)-스콧 루딘 [6]
2003-03-14
글 : 김혜리

그러나 루딘은 1987년 폭스를 떠나 독립 프로덕션을 차리고 파라마운트와 독점적인 계약을 맺었다. 게이 친구이자 동료인 작가 폴 루드닉이 쓴 <아담스 패밀리>와 <시스터 액트>, 그리고 같은 해 제작한 <꼬마 천재 테이트>로 시장과 예술에 대한 기본 감각을 입증한 그는 “얼굴 보기도, 말 섞기도, 같이 밥 먹기도 싫은 인간투성이인” 할리우드를 떠나 문학과 연극의 좋은 소재를 낚시질하기 좋은 뉴욕으로 1994년 이주해 센트럴파크 웨스트에 정착했다. 루딘의 존재로 인해 파라마운트 스튜디오가 뉴욕 지사나 문학 전문 에이전트에 들일 비용을 대폭 절약하고 있다는 점은 알려진 사실이다.

결코 시계를 차지 않지만 늘 약속시간보다 이르게 나타나는 스콧 루딘의 습성은, 예술가와 보헤미안의 세계에 한발을 두면서도 그것을 상품으로 가공하기 위해 세상의 어떤 사업가보다 각박하게 움직여야 하는 그의 일상을 대변한다. 루딘의 불같은 성격과 잔인한 매너는 무례함이 권력의 제스처로 통하는 세계인 할리우드에서도 경외의 대상. 공항에 늦게 마중 나온 어시스턴트를 도로 위에서 차 밖으로 내쫓아 집까지 걸어가게 만든 일화가 있으며, 세간의 원한을 아는 듯 <야망의 함정> 흥행 보너스로 받은 스포츠 카를 “이런 걸 탔다가는 총 맞기 십상”이라며 도로 돈으로 바꾼 일화가 있다. 의사도 원인을 모르는 열이 몸 안에 많아 수시로 생수를 들이켠다는 루딘은, 같은 종목의 일인자 하비 웨인스타인과도 <디 아워스> 제작과정에서 니콜 키드먼의 가짜 코나 필립 글래스의 음악을 놓고 몇 차례 결투가 있었다는 후문. 하지만 스콧 루딘은 남뿐만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잔인하다 . “<사브리나>를 리메이크하는 것은 인간이 품을 수 있는 가장 멍청한 아이디어였고 그 인간이 나였다”라고 잘라 말하며 자신의 실패작은 거의 다 망해 마땅했다고 평한다.

날카로운 눈+억센 추진력

성공한 사람들이 종종 그렇듯 스콧 루딘의 파워는 그가 지적이면서도 적당히 야만적인 인물이라는 점에서 솟는다. 루딘은 연극과 문학의 전문적 소양을 밑천으로 삼으면서도 할리우드 주민들에게 골치 아픈 이족(異族)이라는 인상을 주지 않는다. “무엇이 좋은 영화 소재인지 시장이 내게 가르쳐줄 필요는 없다!”고 단언하는 루딘은 이거다 싶으면 원작소설을 출간되기도 전에 200만달러에 사들이는 열광적인 감식자인 동시에, 기획이 잡히면 “이게 될까? 팔 수 있을까?”를 이리저리 상상하기보다 새벽 5시부터 전화를 걸어대기 시작하는 확실한 오퍼레이터다. 스콧 루딘에게는 몇 가지 참을 수 없는 일들이 있다. 그는 시사실에서 걸려오는 휴대폰 받아가며 영화를 볼 뿐, 8달러를 내고 극장 앞에 줄을 서본 경험이 없는 스튜디오 경영인들을 싫어한다. 캐스팅이나 원작 선정에 타인이 토를 다는 것에 격분한다. 심지어 예측 못한 성공이라고 해도 예측하지 못한 결과는 무조건 싫고, 누군가 차려놓은 밥상을 싫어하며, 자기가 통제하고 형상을 빚어나갈 수 없는 영화를 싫어한다. 최근 <아담스 패밀리>의 배리 소넨필드와 짝을 이루어 추진 중이던 파라마운트의 <레모니 스니켓의 일련의 불운한 사건>이 특수효과와 예산 부담을 이유로 스티븐 스필버그의 드림웍스를 끌어들이자 루딘은 손을 뗐다. 이제 루딘이 당분간 함께할 믿음직한 파트너는 영국의 감독들이다. <디 아워스>의 스티븐 달드리와 퓰리처 수상작을 각색한 <카발리어와 클레이의 환상적 모험>과 데이비드 헤어가 각색 중인 <코렉션스>를 만들어 동반관계를 굳힐 참이고 <프리덤랜드>에는 마이클 윈터보텀 감독과 줄리언 무어를 불러들인다. 2천만달러 미만의 저예산영화와 9천만달러 이상 대작으로 양극화되며 점점 황폐해지고 있는 할리우드의 ‘중간계’에서 스콧 루딘의 날카로운 눈과 억센 추진력은 어느 때보다 요긴해 보인다. 김혜리 vermeer@hani.co.kr

스콧 루딘을 말한다“영화를 먹고 마시고, 그 안에서 잔다”

“열한살의 형은, 내가 차고에서 자전거를 만지작거리는 동안 위층에서 <아이다>의 캐스팅을 새로 짜며 놀았다.” - 스콧 루딘의 동생 브루스 루딘

“이 젊은이보다 더 열심히 일하는 인간은 없다. 그는 카첸버그(역시 일중독자로 골든 리트리버라는 별명을 당시에 갖고 있었다)를 늙고 병든 래브라도 개처럼 보이게 만든다.” - 전 폭스 사장·프로듀서 래리 고든

“루딘이 문제삼는 것은 언제나 최고의 영화, 최고의 감독, 최고의 시나리오다. 본인의 호텔 방 크기나 리무진 같은 화제는 떠오르지 않는다. 그는 영화를 먹고 영화를 마시고 영화 안에서 잔다.” - 파라마운트 사장 셰리 랜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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