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할리우드 명 프로듀서 3인전(傳)-스콧 루딘 [5]
2003-03-14
글 : 김혜리

할리우드 최후의 탐미안

<로얄 테넌바움> <디 아워스> 제작자 스콧 루딘(Scott Rudin)

작가 마이클 커닝햄은, 높낮이 없이 의식의 흐름을 따라 흘러가는 자신의 소설 <세월>이 뜻밖의 성공을 거두자 에이전트에게 말했다.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해요. 아무도 이 괴물을 영화로 만들려 하지는 않겠죠.” 그러나 커닝햄의 전화는 얼마 안 가서 울렸다. 스콧 루딘(43)이었다. 영화화가 불가능해 보이는 문학물에 대한 특별한 투지와 수완으로 이름난 제작자 루딘은, <빌리 엘리어트> 이전부터 지켜봐온 스티븐 달드리 감독과 <세월>의 여인들과 감수성이 상통하는 캐릭터를 묘사했던 작가 데이비드 헤어를 엮고, 최고의 세이렌 니콜 키드먼, 줄리언 무어, 메릴 스트립을 일급 조연들로 감싸 아트필름계의 ‘이벤트영화’를 만들어냈다.

왕성한 제작이력

영화저널리스트들이 제작자 스콧 루딘을 거명할 때 습관처럼 끼워넣는 수식어는 ‘다산’(prolific)이다. 제작예산이 초현실적으로 부풀면서 할리우드 시스템의 자기방어 메커니즘은 영화 만들기 공정을 느리고 성가신 과정으로 바꿔놓았다. 도처에 프로젝트를 떨어뜨리려는 밸브가 작동하는 상황에서 평균 연간 네편의 중량감 있는 영화를 꾸준히 내놓는 스콧 루딘의 생산력은 감탄스럽다. 단순한 물량의 문제는 아니다. <아담스 패밀리> 시리즈(1991, 1993)를 지나 <클루리스>(1995)에 이르러 눈썰미 좋은 관객에게 기억되기 시작한 루딘의 이름은 언젠가부터, “할리우드가 최상의 컨디션일 때 만들어낼 수 있는 대중영화” 열에 서넛은 크레딧에 들어 있는 서명이 됐다. 에이전트들이 프로젝트 패키지를 꾸리는 중매인 역을 프로듀서로부터 넘겨받은 현대 미국 영화계에서 루딘은 1930년대 스튜디오 황금기 제작자들의 방식으로- 비서가 정리한 시놉시스가 아닌 시나리오를 읽고, 프로덕션에 필요한 배우를 비롯한 필름메이커들을 직접 설득하는 고전적 스타일로 성공했다.

<인 앤 아웃> <슬리피 할로우> <트루먼 쇼> <원더 보이즈> <로얄 테넌바움> <디 아워스> 등 루딘의 영화에는 보이지 않는 연속성이 있다. 그의 영화는 모두 상업적 잠재력을 어딘가 깊은 곳에 감춘 오락영화이며 대대적인 첫주 개봉은 못해도 확대 개봉을 너끈히 노릴 만한 카드들이다. 작가적 개성을 보존한 비주류적 감수성의 영화지만 루딘의 영화는 어떠한 경우에도 화려함과 윤기를 잃지 않는다. 스타가 있고, 캐스팅이 섬세하고 디자인과 특수효과 같은 프로덕션의 가치에 돈과 공을 충분히 들여서, 보기에 아름답고 DVD로 소장하고 싶은 팬시한 속성을 지녔다. 여기에는 노란 안전선, 혹은 한계가 있다. 루딘의 취향은 소재와 주제를 막론하고 ‘날것’을 들이대어 사고와 감성을 자극하는 전략을 천성적으로 꺼린다. 그의 영화는 어떤 방향으로든 극단에 이르는 일은 없을 것이다. 돈만 갖고는 딱 절반만 채워지는 스콧 루딘의 욕심은, ‘스콧 루딘 프로덕션’을 지나치게 값싸지도 고상하지도 않은 그러나 신뢰할 수 있는 브랜드로 만들었다. “괜찮은 프로젝트를 갖고 있는 제작자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항상 스콧이다. 그는 훌륭한 취향의 소유자다.” 줄리언 무어의 말은 할리우드가 스콧 루딘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총평이다.

“LA는 밥맛, 난 뉴욕으로 간다”

멋쟁이들이 발에 채는 할리우드에서 누구랑 미팅을 해도 ‘미녀와 야수’의 한 장면을 연출하는 텁수룩한 거구의 스콧 루딘은 롱아일랜드 볼드윈에서 태어났다. 연극을 사랑한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유명한 브로드웨이 프로듀서 에마누엘 아젠버그의 비서로 일하기 위해 브라운대 장학금을 거절하여 교육열 높은 유대인 집안에 파란을 일으켰다. 브로드웨이 캐스팅 디렉터로서 될 작품, 안 될 작품을 가리는 판단력을 익힌 그는 할리우드 캐스팅 디렉터를 거쳐 독립 프로듀서 래리 고든과 협력하다 1984년 고든이 이십세기 폭스 사장으로 임명되자 부사장이 됐고 고든이 독립 영화계로 돌아가자 사장으로 임명됐다. 사람들은 회오리바람처럼 일하는 스물여덟살의 루딘을 가리켜 “상어가 상어가 되기 위해 태어났듯 이 남자의 운명은 스튜디오 간부다”라고 말했다.

스콧 루딘 주요 필모그래피

<디 아워스>(2002)<체인징 레인스>(2002)<아이리스>(2001)<로얄 테넌바움>(2001)<원더 보이즈>(2000)<슬리피 할로우>(1999)<비상근무>(1999)<트루먼 쇼>(1998)<인 앤 아웃>(1997)<마빈스 룸>(1996)

<랜섬>(1996)<클루리스>(1995)<아담스 패밀리2>(1993)<야망의 함정>(1993)<꼬마천재 테이트>(1991)<퍼시픽 하이츠>(1990)<유혹의 선>(1990)<미세스 소펠>(1984)<레클리스>(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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