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이독자에게]
스콧 루딘
2003-03-14

이번호엔 할리우드를 주름잡는 프로듀서 3명을 소개했다. 독자분들도 마찬가지리라 짐작되지만, 우리의 눈길을 가장 오래 붙들어둔 사람은 <디 아워스>의 제작자 스콧 루딘이다. 그는 지성인이나 예술가가 아니라, 생존에 능한 장사꾼이다. 그것도 야심만만하고 난폭한 장사꾼이다. 하지만, 소개된 그의 작품들과 그의 언행에서, 우리는 그가 할리우드라는 흥행광들의 전쟁터에서 지켜낸 게 생존뿐만 아니라 영화의 자존이라고 믿게 된다. 이를테면 그가 가장 싫어하는 세 가지 중 하나는 시사실에서 걸려오는 휴대폰 받아가며 영화를 보지만 8달러를 내고 극장 앞에 줄을 서본 경험은 없는 스튜디오 경영인들이다. 루딘이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면 <디 아워스>는 물론이고, <로얄 테넌바움>이나 <원더 보이즈>에 손을 대긴 어려웠을 것이다.

한국영화가 앞으로도 관객의 변함없는 격려와 응원의 대상이 된다면, 그건 충무로에 스콧 루딘 같은 사람이 있어서일 것이다. 충무로는 조엘 실버의 <매트릭스>의 규모와 겨누긴 힘들겠지만, <디 아워스>의 감동에 이를 수는 있다. 다행히 충무로엔 그런 사람들이 있어왔다. 생존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자존을 지키는 건 더 어려운 일이다. 불모의 토양 위에서 그 이중의 고통을 기꺼이 껴안고 분투한 사람들이 있어, 한국영화의 르네상스가 있었다. 영화세상엔 소수가 지지하는 강직한 예술도 있고, 다수가 소비하는 상품도 있다. 한국영화 르네상스에서 가장 흥미로운 건 그 둘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균형을 잡아나간, 김혜리의 표현을 빌리면 스콧 루딘이 속한 ‘중간계’ 영화들의 승리였다. 그리고 그것이 한국영화가 문화적 자존과 산업적 힘을 지킨 주동력원 가운데 하나였다.

하지만 세상이 조금씩 변해왔다. 한국영화는 더 커지고 요란해졌지만, 그런 사람들의 터전은 조금씩 좁아지고 있다. 만날 때마다 그들 중 다수의 한숨소리가 조금씩 커져가고 있다. 그 경위를 여기서 다시 열거하는 건 불필요할 것 같다. 다만, 그런 사람과 그런 영화들이 충무로에서 사라질 때, 한국영화는 더 큰 소비의 대상이 될지언정, 존중과 애정의 대상은 더이상 아닐 것이다. 그리고 스크린쿼터는 무의미해질 것이다. 우리는 솔직히 이창동 감독을 뺐겼다는 느낌에서 벗어나기 힘들지만, 그의 문화부가 이 점을 잘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하지만 정책이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소수의 예술을 보호하는 것보다 이건 훨씬 더 어려운 문제다. 한국영화의 영광이 지속된다면, 그건 아마 앞으로도 이중적 욕망을 참지 못하고 난폭하고도 능숙하게 분투하는 한국의 루딘들이 시장에서 생존하고 승리한다는 뜻일 거다. 그러길 소망한다.

(짧게는 2년 길게는 7년 일해오던 사람들이 떠나가고 새 식구들이 <씨네21>로 들어왔습니다. 창간멤버였고 학계와 현장을 두루 거친 김소희씨를 비롯해서, 심은하(배우 아님) 박혜명, 권은주씨가 그들입니다. 새 식구들과 함께 좀더 똘똘한 잡지 만들도록 애쓰겠습니다. 변함없는 격려와 질책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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