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3월을 우리는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미국의 미사일 아래 놓인 이라크 사람들의 공포는 어떻게 기억될 것이지…. 영국 하원은 토니 블레어가 주장한 영국군의 이라크전 참전을 승인했다. 이런 전쟁 위기의 시대에 영화는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 <원더랜드>와 로 이미 인정받은 바 있는 영국 감독 마이클 윈터보텀의 <이 세상에서>(In This World)가 지난 2월 베를린영화제에서 대상인 금공상을 수상한 것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프가니스탄 난민인 자말이라는 소년과 에니얏라는 그의 사촌이 파키스탄의 난민촌에서 런던까지 오는 여정을 담은 이 영화는, 2001년의 영국 의회선거 중 가장 뜨거운 이슈으로 등장한 이민, 난민(asylum seeker)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보스니아 등 동유럽, 아프가니스탄으로부터의 난민들을 포함해 이라크 난민의 숫자가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 정부는 난민의 숫자를 급격하게 줄이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마이클 윈터보텀은 난민들이 거쳐오는 그 길고 지루하면서도 위험천만한 여정을 디지털카메라로 담아냈다.
각각 그들이 도착하는 장소에서 벌어질 상황만을 설정하고 아무런 대사나 연기지시 없이 그때그때 그들의 반응을 담아낸 이 영화는, 엄격한 의미의 다큐멘터리영화는 아니지만, 가장 사실적일 수 있는 인물들로부터 사실적인 상황에 가깝게 다가갔다는 점에서 부인할 수 없는 진실성을 드러낸다.
촬영과정에서의 가장 큰 문제는 난민 자격으로는 어떤 국경도 정당한 방법으로 지날 수 없다는 것이었다고. 마이클 윈터보텀은 가급적 정직한 방법으로 국경을 넘고자 시도했지만, 결국 문서위조, 매수, 밀입국 등의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음을 밝히고 있다. 촬영 뒤 다시 파키스탄으로 돌아갔던 배우 중 한명인 자말은 편집과정이 끝나갈 무렵인 지난해, 실제로 다시 런던으로의 여행을 택해, 영국에서 난민 자격을 신청했지만 거부당한다. 그러나 아직 미성년인 덕분에 자말은 그의 18살 생일까지만 영국에서 머물 것이 허용된 상황이다. 마이클 윈터보텀은 이 자말의 현재 상황을 영화 말미에 자막으로 소개한다. 실제의 자말의 삶과 영화 속 자말의 삶이 겹치는 순간이다.
윈터보텀의 영화가 보여주는 ‘이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생각 끝에 어쩔 수 없이 묻게 되는 것은, 과연 한국영화는 이 전쟁의 시기- 미국과 북한의 전쟁 가능성, 북한 난민 등등- 에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하는 것이다. 런던에서 열린 국제인권영화제의 오프닝 필름이기도 했던 <이 세상에서>는 3월28일 영국에서 개봉한다. 런던=이지연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