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새로 나온 ‘스티븐 킹’표 영화 <드림캐처> LA 세계 첫 시사
2003-03-25
글 : 옥혜령 (LA 통신원)

드림캐처란 ‘꿈을 잡는 사람’이라는, 참으로 낭만적인 말이 아닐까 하는 막연한 기대는 <드림캐처>의 시사회장을 나오는 순간 여지없이 깨지고 있었다. 꿈은 꿈이되 악몽을 말하는 것이고, 드림캐처는 아메리칸 인디언들이 악몽을 잡기 위해 잠자는 동안 머리맡에 걸어두는 부적 같은 장식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매사가 그리 간단할 리 없다. 하나쯤 있으면 왠지 잠자리가 든든할 것 같은 드림캐처의 매력은 스티븐 킹의 펜 끝에서 태어나 로렌스 캐스단의 손길을 거친 <드림캐처>의 이상한 세계에서 자못 여러 가지 모습으로 탈바꿈하고 있었으니….

한 영화, 세 작가

3월20일 미국 개봉을 앞두고 LA의 베벌리힐스에서 국내외 기자들을 상대로 첫선을 보인 <드림캐처>는 <스탠 바이 미> <미저리> <쇼생크 탈출> <돌로레스 크레이븐> <하트 인 아틀란티스>에 이르기까지 스티븐 킹의 베스트셀러들을 전문적으로 영화화해온 캐슬락엔터테인먼트가 리스트에 새로이 추가한 ‘스티븐 킹’표 영화다.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에 숨겨진 슬픔과 상처를 공포와 서스펜스로, 때로는 유머를 곁들인 복합적인 드라마로 만들어내는 ‘스티븐 킹’표 스토리의 매력을 고려할 때, 동명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이 영화도 홍보문구마냥 단순한 SF호러영화는 아닐 거라는 일말의 기대감이 시사회장을 떠돌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감독은 <보디 히트> <멈포트> 등 깊이있는 캐릭터드라마로 정평있는 로렌스 캐스단. <드림캐처>는 그가 20년의 감독 경력에 처음으로 시도하는 이른바 ‘특수효과’로 가득한 영화다. 그러나 캐스단의 경력에 <인디아나 존스: 잃어버린 방주> <스타워즈: 제국의 역습, 제다이의 귀환>의 공동 각본자라는 타이틀이 올라 있는 것을 기억한다면, 그의 새로운 도전이 사실 놀라운 건 아니다. 늘 그러했듯, 캐스단은 영화의 최종 촬영 스크립트를 직접 썼다. 한편 정작 600페이지가 넘는 스티븐 킹의 원작을 2시간짜리 시나리오로 각색해낸 이는 <내일을 향해 쏴라>의 오리지널 시나리오 작가이자 <미저리>로 아카데미 각색상을 수상한 윌리엄 골드먼이다. 나름대로 일가를 이룬 세명의 작가가 만나서 작업을 할 때 갈등이 없었을까 싶지만, 각본과 캐스팅, 스탭까지 한 호흡으로 묶어내고야 마는 캐스단의 꼼꼼한 용병술 정도는 있어야 감독의 역할이 가능하다고 믿는 골드먼이나, 자신의 호러 작품 중에서 <미저리> 이후 가장 성공적으로 영화화된 작품이라 인정했다는 스티븐 킹의 반응을 고려해볼 때, 이들의 랑데부는 나름대로 성공한 듯하다.

연례행사처럼 함께 모여 드림캐처를 바라보며 더빗을 추억하는 이 네친구에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다.

즐거운 스펙터클

<드림캐처>는 네명의 친구들에 관한 영화다. 정신과 의사인 헨리, 자동차 세일즈맨 피트, 대학교수가 된 존시, 목수인 비버는 어릴 적 함께 놀던 어깨동무들. 30대 초반이 되기까지 다른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각별한 우정을 유지하고 있는 이들에게 남다른 점이 있다면, 다들 약간의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헨리는 정작 이로 인해 정상적인 진료 행위가 힘들고, 피트는 숨겨진 물건을 찾아내는 능력을 고작해야 여자를 유혹하는 데 써보지만 번번이 실패하는 등, 이들의 초능력은 오히려 평범한 삶을 힘들게 하는 거추장스런 존재다. 뭔가 크게 이룰 사명도 목적도 없는 듯한, 있으나마나한 초능력은 어린 시절 영웅심을 발휘하여 지체부자유라 놀림받던 동네친구 더빗을 곤경에서 구해주고 얻은 선물. <스탠 바이 미>를 연상시키는 이들의 어린 시절, 신비스런 존재 더빗과 더불어 더빗이 선사한 초능력으로 실종된 소녀를 찾아내던 희열은 더빗이 이들의 삶에서 사라지면서, 그저 평범한 일상인의 모습 속 깊이 감춰졌다.

그러던 어느 날 폭설이 쏟아지는 깊은 산 속의 통나무집에서 연례행사처럼 함께 모여 천장에 매달린 드림캐처를 바라보면서 더빗을 추억하던 이들에게 예상치 못한 사건이 발생하니, 망망대해의 설원에서 고립된 이들에게 또 한번 주어진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온 것일까.

실제 폭설이 쏟아지는 밴쿠버의 촬영현장에서 동고동락하며 쌓아낸 배우들의 연기호흡은 남자들만의 세계를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매그놀리아> <부기 나이트>로 낯이 익은 토머스 제인,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데미안 루이스를 비롯해 티모시 올리펀트, 제이슨 리, 도니 월버그 등 다섯명의 배우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공포에 맞서는 캐릭터들을 주도면밀하게 연기해낸다. 실제 촬영시간 못지않게 리허설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캐스단 감독의 치밀성은 배우들의 개성적인 연기를 살리기 위한 일대일 연기지도에서 그 면목을 드러냈다고. 게다가 실제 폭설이 쏟아지는 밴쿠버의 촬영현장에서 동고동락하며 쌓아낸 이들의 연기호흡은 여자주인공이 등장하지 않는 남자들만의 세계를 여실히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자신의 임무에 너무 충실한 나머지 독단으로 치닫는 특수부대 장교 역의 모건 프리먼의 악역 연기도 의외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특수효과가 들어간 영화를 그렇게 하고 싶었다는 캐스단 감독의 연출의 변처럼 <드림캐처>의 또 다른 주인공들은 세련된 특수효과로 만들어진 외계인과 우주선들이다. 하지만, 결국 특수효과라는 테크놀로지도 사용하는 자의 비전에 따라 다른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증명하듯, <드림캐처>의 특수효과는 현란한 시각적 이미지만으로도 관객을 사로잡는 여타의 스펙터클과는 다소 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특수효과와 공포, 유머가 동시에 존재하는 복합적인 경험을 전달하려 했다는 감독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이나 등을 통해 이미 익숙해진 소재인 외계인 병원체가 주는 공포도 <드림캐처>에서는 코믹하거나 진지하다. 제작진이 만장일치로 꼽는 영화의 백미, 화장실신에 이르면 피가 튀는 하드고어의 현장에서도 웃을 수밖에 없다.

네명의 친구가 발휘한 영웅심이 더빗의 드림캐처였듯, 다시 더빗과 더빗이 선사해준 능력이 지구를 악의 무리에서 구하는 드림캐처가 되듯, 눈앞에 보이지 않을 뿐 악몽을 잡는 드림캐처 하나씩은 우리에게도 있을 법하다.

로렌스 캐스단 감독 인터뷰"캐릭터가 없으면 아무것도 없는거다"

영화를 만들 때 항상 가장 효과적인 메타포를 찾으려고 노력한다고 했는데, 이번 영화에서는 메타포 찾기에 만족하는지.

화장실신을 참조하면 될 것이다. (웃음) <드림캐처>는 어딘가에 있는 혼란과 공포를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에 관한 영화다. 그건 우주 저 너머에 있는 외계 생물체일 수도 있고, 인간들의 내면에 숨겨진 그 무엇일 수도 있다. 스티븐 킹은 우리 속에 숨겨진 깊은 공포를 대변하는 기발한 메타포를 찾아내는 데 탁월한 재능이 있다.

특수효과가 중심인 장르영화 제작은 처음인데.

예전부터 특수효과가 들어가는 영화를 하고 싶었다. <인디아나 존스>나 <스타워즈> 등의 영화제작에 참여하면서 액션이나 특수효과가 만들어지는 과정들을 지켜보고, 상상으로만 가능한 장면들이 만들어지는 것이 흥미로웠다. 원래 서부극이나 SF 영화를 좋아한다. 이번에도 직접적으로 인용한 것은 아니지만 평소에 좋아하는 이나 <에이리언>의 느낌을 주는 신을 만들고 싶었다. 게다가 우정이라든가 휴머니즘을 강조한 드라마는 이제 좀 지겨워졌다.

특수효과에 대해 그렇게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왔다면, 어떤 식으로 특수효과를 쓰고 싶다든지 하는 개인적인 견해가 있는지.

내가 특히 관심있는 것은 외계인으로 가득 찬 별나라 같은 환상적인 배경공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매우 현실적인 상황에서 갑자기 등장하는 혹은 변화하는 ‘캐릭터’를 만드는 일이다. 간혹 극장에 가서 보는 특수효과영화들에는 캐릭터가 없다. 나는 일단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에 관객이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수효과를 쓰더라도 관객이 캐릭터에 관심을 가질 때라야 그 효과가 살지 않을까.

이번 영화를 통해서 디지털 테크놀로지에 대해서도 새로운 경험을 했다고 이야기한 것을 들었다. 영화제작에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끼치는 영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미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영향력은 우리가 매일 목격하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영화작업의 모든 측면을 변화시킬 것이다. 100년의 역사를 지닌 필름은 나름의 장점은 있지만, 기록의 속도나 이미지의 변형 가능성에서 디지털을 못 따라간다. 디지털 기술의 등장 이후 영화를 만드는 자세와 방법 자체가 달라졌다. 예를 들어, 종종 촬영기사들이 자신들이 찍어놓은 신을 포스트프로덕션에서 이렇게 저렇게 바꿨다고 불평하는 것을 듣는데 이건 비단 한 예일 뿐이다.

그렇다면,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감독의 연출방식에도 영향을 끼쳤는지.

전통적인 방식대로라면 그날그날 촬영현장의 상황에 맞추는 게 감독의 중요한 역할이기도 하다. 예기치 않은 비가 오면 촬영을 못 한다든가, 대안을 찾든가 했는데, 이젠 간단하게 포스트프로덕션에서 햇살을 집어넣을 수도 있으니 근본적으로 영향을 끼친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나 같은 구세대는 다소 적응하기 힘들지만, 본질적으로 영화는 ‘진짜처럼 보이는 거짓말’을 스크린에 만들어내는 작업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디지틀 테크놀로지도 새삼스러울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에서 감독이 가장 애착을 갖는 신은.

아무래도 화장실신이 백미다. 내가 영화에서 복합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유머와 공포와 세련된 특수효과가 모두 녹아 있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영화를 만들어오면서도 아직도 영화에 ‘배고프다’는 말을 했는데, 앞으로 어떤 영화를 더 만들고 싶은가.

모든 종류의 영화를 다 해보고 싶다. 최근에 가장 인상깊에 본 <그녀에게> 같은 영화나 젊을 때 좋아했던 구로사와 아키라의 같은 영화도 해보고 싶다. 하지만, 요즘처럼 10대 관객의 입맛에 맞추는 영화들을 쏟아내는 제작환경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겠지. 다음 작품으로는 독일영화를 리메이크한 <마샤>(Mostly Martha)를 준비하고 있다. 이번 영화에서는 여자주인공이 없었지만, <마샤>는 전적으로 여자 주방장에 관한 영화가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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