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이것저것 다 해보고 싶어요˝<질투는 나의 힘>의 서영희
2003-03-26
글 : 박혜명
사진 : 정진환

배우가, 자기 안에 존재하는 그러나 자기 자신도 다 알지 못하는 다양한 얼굴을 끄집어내는 직업임엔 분명하다. <질투는 나의 힘>에서 주인공 원상에게 반 병적인 집착을 보이는 하숙집 딸 혜옥이는 죽어갈 듯 희끄무레한 낯빛에 새카만 머리칼을 등 뒤로 흘리고 다니는 폐쇄적인 아이였다. 그런 혜옥이를 밖으로 꺼내놓고 자신은 혜옥이의 뒷목께 어디쯤엔가 숨어 있다가 조심스럽게 모습을 드러낸 서영희란 사람은, 굳이 역(逆)으로 비유한다면 혜옥이가 감췄을 법한, 밝고 구김살 없는 아가씨였다.

보석디자이너를 꿈꾸던 미대 준비생은 어느 날 연극 <지하철 1호선>을 보고 와선 연기를 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러고나서 그동안 줄기차게 다녔던 미술학원 바로 옆에 있는 연기학원 문을 열고 들어간 때가, 수능시험을 친 직후였다. 현재 동국대 연극영화과 3학년에 재학 중인 그는 지난 2년을 휴학하면서 연극무대의 경험을 쌓았다. <지하철 1호선>을 공연했던 극단 학전의 99년 작품 <모스키토> 공연에서 ‘날라리’를 연기했고, 2000년 박광정 연출작 <저 별이 위험하다>에서는 ‘소녀’로, 2001년 역시 박광정 연출작 <진술>로 무대에 올랐다. <질투는 나의 힘>과 그를 ‘중매’해준 작품은 바로 <모스키토>. 박찬옥 감독이 공연 팸플릿을 보고선 만나고 싶다는 연락을 했다. 연기에 대한 애정과는 별개로 자신의 연기력에 대해 스스로의 믿음조차 불확실했던 그때의 그를, 박 감독은 있는 그대로 믿어줬다. 그것이 큰 힘이 되어 <질투는 나의 힘>에 합류할 수 있었다고 한다.

<질투는 나의 힘>의 혜옥을 연기하기 전, 감독의 믿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난생처음 경험하는 영화에 대한 불안감을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박 감독은 그런 그를 데리고 혜옥에 대한 이야기와 서영희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그 과정에서 서영희는 조금씩 긴장을 풀어갔고 뜬구름 속에 있던 혜옥을 점점 자기 안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아직은 내가 어떤 걸 잘할 수 있는지 어떤 걸 잘못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장르나 배역에 상관없이 이것저것 다 해보고 싶어요. 일단 겪어봐야 알 것 같아요. 그러면 그때 가서 ‘이런 게 하고 싶다, 저런 건 피하고 싶다’라는 게 생기겠죠.” 그때까지는 그가 배워야 할 것도, 배우고 싶은 것도 많다. 그러나 낙천적인 성격 탓에 욕심은 많지만 스스로를 재촉하지는 않을 것이다. 당분간 학교생활에 충실하면서도 좋은 기회가 오면 놓치지 않겠다고 말하는 그가 끝에 가서 원하는 자기 자신의 모습은 ‘배우 서영희’였다. 아직은 그의 머릿속에 ‘배우 서영희’만의 구체적인 이미지가 없었지만, 그게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배우가, 자기 안에 존재하는 그러나 자기 자신도 다 알지 못하는 다양한 얼굴을 끄집어내야 하는 직업임에 분명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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