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어쩌다 쪼다가 되었을까
어렸을 적 난 집에 있는 라이프지 중 어떤 스웨터를 입은 청년이 총부리를 들이댄 시위 진압대에 골똘한 얼굴로 꽃을 총부리에 꽂아넣는 장면을 보고 인상 깊었던 게 기억난다. 밑에는 플라워 무브먼트라고 써 있던가? 그 청년이 골똘한 표정에 무슨 생각을 저리 열심히 할까를 생각하며 그 시대 그 반전의 분위기에 그 사진들은 솔직히 설렘을 주었다. 삼촌 세대는 저런 시대를 살았나? 그러며….
한참 대학에서 최루탄 맞으며 다닐 무렵 저녁 7시에 세미나고 뭐고 집으로 냅다 달려와 <케빈은 12살>만은 챙겨보았던 시절이 있었다. 케빈과 폴과 위니의 이야기에 울고 웃고 그의 가족, 그의 부모님과 함께 케빈의 회상에 같이 빠져들곤 했다. 가장 기억나는 것은 드라마에서 케빈 누나의 히피생활 그리고 반전시위 참가, 집을 나가고 다시 들어오고 하는 것을 케빈의 시각으로 보는 장면에서 ‘아… 이 드라마가 그냥 코미디드라마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케빈은 마치 라이프지를 보는 나처럼 누나를 동경 또는 호기심으로 바라보며 안타까워 했다. 그리고 이런 우리가 케빈의 누나가 되고 또 다른 케빈들이 복제되고 있었다.
연일 전쟁이 터진다 만다 이런 와중에 을지로를 터벅터벅 걷다가 <케빈은 12살>(The wonder years) 주제곡이 어디서 흘러나온다. 뚱보에 대머리 조 카커가 부른 저 노래 . 어딘지 뚱보와 대머리에 친근감을 느끼며 바보같이 걸어가다가 바닥에 펼쳐진 비디오 중에서 리버 피닉스의 <샌프란시스코에서의 하룻밤>이란 비디오를 샀다.
이미 TV에서 ‘청춘송가’란 이름으로 방영한 적이 있는 이 영화는 원제가 <개싸움>(Dogfight)이다. 리버 피닉스(에디)가 베트남전에 참전하는 당시 해병대로 나오고 오키나와 출전 하루 전날 샌프란시스코에 머물며 가장 못생긴 여자를 데려와서 노는 게임(일명 dogfight)을 하게 된다. 에디는 못생긴 여자 파트너를 구하러 다니다가 커피숍에서 일하는 여자 로즈를 만나게 된다(바로 릴리 테일러. 아벨 페라라 영화에서 흡혈귀로 나오던 묘한 목소리의 여자). 로즈는 외모는 조금 우스웠지만 반전 노래를 쉰목소리로 열심히 불러주기도 하고 자신의 세계관이 확고한 알면 알수록 매력적인 여자였다. 이런 그녀와 에디는 샌프란시스코의 이곳저곳을 밤새 다니며 데이트를 한다. 다음날 베트남전 출전 중 버스 속에서 에디는 “우린 어쩌다 쪼다가 됐을까” 하고 혼잣말을 한다. 그리고 4년 뒤 다리를 절며 돌아온 에디는 반전 분위기 속에서 모두들에게 외면당한다. 명분도 없는 베트남전에 갔다온 에디를 진보성향이 가장 센 샌프란시스코에서 반길 리 만무하다. 그런 그를 따뜻하게 맞아주는 사람은 밤새 샌프란시스코를 걸으며 쉰목소리로 반전 노래를 열심히 불러주던 못생긴 그녀, 로즈뿐이다. 이렇게 영화는 끝난다.
아마도 케빈의 누나 같은 젊은이들이 돌아온 리버 피닉스를 쌀쌀히 대했을 거라고 상상을 해본다. 스스로를 쪼다라고 생각하며 전쟁에 간 젊은이들….
아마도 오래지 않은 훗날… 이 미치광이 전쟁에 참여한 우리 젊은이가 쓸쓸하게 돌아와 술집에 앉아 있는 모습을 우린 어렵지 않게 상상이 된다. 문제는 영화처럼 미국이 아니므로 더 굴욕적인 기운이 감돌겠지…. 우린 스스로를 쪼다라고 생각하기엔 억울하다…. 이런 일이 없게 <케빈은 12살>에 나오는 케빈의 누나 처럼 계속 전쟁반대는 외칠 것이고 <샌프란시스코에서의 하룻밤>의 로즈처럼 못 부르는 노래를 열심히 불러대는 친구들도 자기 복제될 것이다. 정말 지금의 전쟁은 영화제목처럼 ‘개싸움’일 뿐이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파병 약속을 한 이 시점에서 한번 생각해보며 종로를, 광화문을, 쿵쾅쿵쾅 걸어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