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새 영화] <지구를 지켜라!>
2003-04-08
한 마리 새가 날았다, 한국 영화계를 치고

새발의 피 내심 2003년의 대표적인 영화가 되리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못마땅한 것은 있다. 나는 이 영화가 킬킬거리는 것이 싫다. 영화의 어떤 부분을 보고 관객이 킬킬거리는 것이야 좋은 일이지만, 영화 스스로 킬킬거리는 것은 못마땅하다. 판타지가 아니라 과장하는 부분이 그렇고, 잔뜩 깔아놓은 사회적 문맥을 킬킬거리며 뒤집는 것도 그렇다. 하지만 이런 점은 이 영화의 장점에 비하면, 그야말로 새 발의 피다. 신인 감독 장준환의 <지구를 지켜라!>는 최근 이상한 이야기에 빠져있는 한국 영화계를 치고 나르는 한 마리 새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너무 재미있고, 짠하다.

천재 혹은 과대망상증 환자 주인공 병구(신하균)는 천재다. 그는 지구를 파괴하려는 외계인의 음모를 알아냈고, 파견된 외계인 강사장(백윤식)을 납치하여 개기월식까지 안드로메다 왕자를 만나려 한다. 그는 외계인의 약점을 알기 때문에 교신 장치인 머리카락을 자르고, 신경 계통을 약화시키기 위해 때밀이 수건으로 급소의 피부를 밀어서 물파스를 발랐다. 졸지에 잡혀온 강사장 역시 보통을 넘었다. 300볼트가 넘는 전기 고문도 견디고, 손바닥에 박힌 못을 뚫고 손을 뺄 정도다.

이후 이 대립하는 플롯은 위기의 플롯으로 바뀐다. 괴팍한 추형사(이재용)가 병구를 추적한다. 동시에 구원의 플롯도 개입한다. 병구를 사랑하는 서커스 걸 순이(황정민)가 그 역할이다. 그러나 이게 전부가 아니다. 병구의 개인사도 스쳐 지나가듯 제시된다. 광부였던 아버지의 황폐한 삶과 생사의 갈림길에 있는 어머니, 애인의 죽음과 자신의 불행한 과거. 이 순간 영화는 판타스틱한 코미디에 현실의 띠를 확실하게 두른다. 병구는 자신의 불행을 외계인 탓으로 돌리는 동시에 지구를 구하고자 나선 것이었다. 천재 아니면 과대망상증 환자, 어느 쪽일까

사실과 야담 <지구를 지켜라>는 야담처럼 보인다. 영화의 공간과 소품 그리고 설정이 그러하고, 쉴 새없이 박혀있는 작은 반전의 순간들도 그러하다. 실내외 카메라 사이즈의 변화와 대조적인 색채 등도 야담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마지막의 큰 반전은 배신감을 느끼게 할 정도로 야담같다. 배신감이 아니라면 적어도 논리적 모순이다. 그런데 정작 엔딩 타이틀에 붙은 모니터 이미지는 슬픈 병구의 이미지를 환기시킨다. 이 부조화에 나는 주목한다. 한 영화 속에서 두 가지 얘기를 하는 이 태도, 논리적 모순을 넘어서서 이미지의 효과에 착안하는 이 태도, 여기서 사실과 야담을 가르는 기준은 무의미해진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1990년대 왕자웨이가 '대중적인' 새로운 현대 영화를 만들었던 것과 비슷한 맥락에서 보고 싶다. 또! 감독은 영화 앞에서 겸손했다. 영화평론가·경희대 교수 이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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