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이연걸이 필요없는 `이연걸표 영화` <크레이들2 그레이브>
2003-04-08
글 : 김봉석 (영화평론가)
■ Story

은행 금고의 다이아몬드를 멋지게 훔치는 데 성공한 토니 페이트(DMX)와 친구들. 그런데 누군가에게 전화가 온다. 경찰이 출동했으니 ‘물건’을 놔두고 가라는 것. 페이트 일행은 겨우 도망치는 데 성공하지만 수중에 남은 것은 처음 보는 블랙 다이아몬드뿐이다. 블랙 다이아몬드를 훔쳐오라고 했던 남자는 누군가에게 살해당하고, 페이트는 대만 정보국 요원 수(이연걸)를 만난다. 수는 대만이 만든 블랙 다이아몬드를 돌려달라고 하지만, 이미 정체를 알 수 없는 갱들이 훔쳐간 뒤다. 한편 블랙 다이아몬드의 주인이라는 링(마크 다카스코스)은 페이트의 딸을 납치하여 교환을 요구한다. 링은 한때 수의 죽마고우이자 동료였지만, 동료들을 살해하고 블랙 다이아몬드를 훔쳐 달아난 인물이다. 페이트는 수의 목숨을, 수는 블랙 다이아몬드를 돌려받기 위하여 연합한다.

■ Review

<황비홍>의 감독 서극은 ‘할리우드는 이연걸의 액션을 제대로 찍지 못한다’고 말했다. <크레이들 2 그레이브>를 보면 액션만이 아니라, 이연걸의 영화를 어떻게 찍어야 하는지 할리우드는 전혀 모르는 것 같다. 한마디로 말한다면 <크레이들 2 그레이브>에는 이연걸이 전혀 필요없다.

아무 배우나 수 역으로 기용해도, 특수효과의 힘을 빌리면 그 정도 액션은 소화할 수 있다. 그나마도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이연걸이 액션을 시작하면, 늘 다른 액션장면이 교차된다. 철창 안에서 격투기 선수들을 물리치는 동안, 페이트는 산악 오토바이를 타고 옥상을 누비고 있다. 그게 더 화끈하고 공도 들였다. 이연걸과 마크 다카스코스를 용호상박으로 붙여놓고도, 이렇게 심심한 액션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정말 불가사의하다.

<크레이들 2 그레이브>의 주인공은 수가 아니라 DMX다. 토니 페이트 일당의 코미디와 액션이 영화를 이끌어간다. 그런데 그것도 한심하다. 이건 아예 플롯이라고 부르기조차 힘들다. 페이트와 수가 이미 쑥밭이 된 클럽에 가서 블랙 다이아몬드를 찾는다. 분수에서 다이아몬드 하나를 찾은 수가 말한다. “링이 왔다 갔어.” 페이트 왈. “어떻게 알아?” 그러자 수의 답은 단호하다. “난 알아.” 매사가 그런 식이다. 사건이 사건을 물고늘어지는 게 아니라, 그냥 앞으로 죽죽 밀려나간다. <크레이들 2 그레이브>는 흑인 관객을 위한 코미디에 추격신과 폭발신을 단순하게 덧붙인 액션영화다. 이연걸과 마크 다카스코스가 왜 나왔는지 알 수 없는.

그래도 <크레이들 2 그레이브>는 미국 개봉 첫주에 1652만달러를 벌어들이며 1위에 올랐다. <로미오 머스트 다이>에 이어 <크레이들 2 그레이브>까지 1위에 올려놓은 안제이 바르코비악이 다시 이연걸과 함께 영화를 만들까봐 정말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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