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레옹>의 모든 장점 파괴하기,<와사비: 레옹 파트2>
2003-04-08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 Story

불같은 성격을 참지 못하는 경찰 위베르는 종종 사고를 친다. 그러나 그는 일본으로 돌아간 옛 애인 미코를 19년 동안이나 잊지 않을 만큼 순수하다. 어느 날 그는 일본에서 걸려온 전화를 통해 미코의 사망 소식을 알게 된다. 일본으로 건너간 위베르는 19년 동안이나 모르던 딸의 존재를 알게 된다. 미코의 시신을 내려다 보던 위베르는 문득 의문스러운 사실을 발견한다. 그리고 정체 모를 사내들이 위베르와 그의 딸 유미를 뒤쫓기 시작한다.

■ Review

<와사비: 레옹 파트2>는 <레옹>과 아무 관계 없으며, 또 관계있는 영화이다. <와사비: 레옹 파트2>에서 배우 장 르노는 위베르란 이름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죽은 레옹의 환생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이야기 위에 서 있는 전혀 다른 인물형이다. 외로운 살인기계가 아닌, 거침없고 위풍당당한 형사가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형사 위베르는 골프채로 사람을 후려 패고, 매그넘 권총을 휘두르며, 스티븐 시걸과 더티 하리를 동시에 떠올리게 한다. 가감없이 스티븐 시걸을 떠올리게 하는 형사 위베르의 캐릭터에서 레옹의 외로움을 상상하기란 힘든 일이다.

완전히 다른 이야기와 인물에도 불구하고 <와사비: 레옹 파트2>는 레옹을 특별하게 만들었던 몇 가지 특징들을 슬쩍 바꿔치기하면서 그 관계를 상상하게 한다. 레옹이 윗몸 일으키기를 킬러의 기본 체력훈련이라고 생각한다면, 위베르가 최고의 운동으로 꼽는 것은 골프다. 레옹이 우유를 좋아하는 것이라면, 위베르는 사케를 물처럼 마셔버리는 습관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도 레옹과 마틸다의 상상적인 부녀관계는 이 영화에서 진짜 아버지와 딸의 관계로 묶여져 있다. 아버지와 딸이라고 속이며 모텔로 들어서는 레옹과 마틸다와 달리 위베르와 유미는 정말 속일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여기서 미묘한 동요는 사라져버리고 만다. <레옹>이 슬픔을 유발할 수 있었던 건 그가 마틸다를 위해 죽음을 선택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 이유가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로서의 사랑이 아니라, 연인의 사랑. 그러니까 <와사비: 레옹 파트2>를 <레옹>과 연관짓도록 하기 위해 섞여 있는 개조된 차용의 흔적들은 오히려 <레옹>과의 관계를 부정하고 싶은 심리를 일으키는 해악의 원인이 되고 있을 뿐이다.

폴 토머스 앤더슨이 <매그놀리아>의 ‘개구리’ 비를 상상도 못했을 시절, <마지막 전투>에서 빗방울 대신 생선을 떨어뜨리며 이미지를 창조해낸 사람이 뤽 베송이었다. 그리고 그가 만든 최고작 중 하나가 <레옹>이었다. 그리고 <와사비: 레옹 파트2>는 뤽 베송 제작, 각본이다. 그런데 <와사비: 레옹 파트2>는 믿기지 않을 만큼 <레옹>의 모든 장점들을 파괴한다. 영화 속에서 딸 유미는 자신과 아버지가 닮은 것은 코뿐인 것 같다고 말한다. <레옹>과 <와사비: 레옹 파트2> 역시 닮아 있는 것은 그 코만큼 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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