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찍은 연기 내것 만들기,<오!해피데이>로 영화 데뷔하는 장나라
2003-04-09
글 : 박은영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첫눈에 반한 이상형의 남자를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스토킹을 감행하는 여자가 있다. 그의 집에 무단침입해 다이어리를 훔치고, 일과를 줄줄이 꿴 다음 사사건건 시비를 걸며 ‘눈도장’을 찍는다. 임자 있는 남자라는 걸 알고도 물러날 줄을 모른다. 이 여자가 과연 정상인가? 그런다고 남자가 넘어올 것인가?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나 <미저리>를 연상시키는 이 스토리는 분명 섬뜩한 스릴러감이다. 그런데 로맨틱코미디가 될 수도 있더란 말이다. 왜냐, 장나라가 출연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장나라의 힘이다. 일단 몸을 던지면, CF든 드라마든 영화든 무조건 ‘장나라화’한다. 십대 중반으로 가늠되는 작고 앳된 얼굴, 가느다란 코맹맹이 목소리를 지닌 이 아가씨는 귀엽고 밝고 건강하다. 순수와 정의로 어른을 교화하는 어린애의 이미지, 예쁜 척하지 않는 대신 예쁘게 망가져주는 팬서비스 정신에 흔들리지 않기란 힘들다. 최진실의 요정 계보에도, 김정은과 전지현의 엽기 계보에도 속하는 장나라는, 어느 누구보다 친근하고 편안한 만인의 연인으로 자리매김했다. 그 매혹은 빠르고 강렬했다. 데뷔 1년 만인 지난 여름의 일이었다. 그리고 다시 1년이 흘렀다. 양손에 닭다리를 든 채 막춤을 추고, 월드컵 출전 선수들에게 뽀뽀 세례를 퍼붓던 장나라가 그 앙증맞은 귀여움을 오롯이 담아낸 영화 <오! 해피데이>로 돌아온다.

잘 속고 잘 잊는 어리버리 나라(<뉴 논스톱>), 촌스럽지만 강단있는 똑순이 양순이(<명랑소녀 성공기>), 솔직하고 터프한 중성녀 송이(<내 사랑 팥쥐>)는 서로 다르면서도 닮아 있는 장나라의 분신들. 이런 역할들은, 자연인 장나라의 이미지와 뒤섞여 시너지 효과를 내기도 했다. 영화 <오! 해피데이>의 캐릭터 공희지는 자연인 장나라를 좀더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하는 경우다. 이상형의 남자 김현준이 공희지에게 끌리게 되는 것은 공희지의 남모르는 선행을 알게 되면서다. 공희지의 연애 작전에 그녀의 가족 전원이 투입돼 활약한다는 설정도 있다. 각종 구호 활동과 캠페인에 적극 참여해온 ‘착한’ 장나라, 그리고 아버지의 우산 아래서 활동하는 ‘가족적인’ 장나라가, 바로 공희지 속에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장나라의 영화 데뷔는 정해진 수순 같은 거였다. 데뷔 1년 만에 TV스타로 급부상하면서 사무실 책상에 시나리오가 쌓이기 시작했고, 그게 서른권이 넘었다. 애니메이션 <어머! 물고기가 됐어요>에 꼬마 주인공의 목소리를 더빙하면서 영화와 연을 맺은 지 몇 개월 뒤, 장나라를 둘러싸고 ‘5억원 데뷔설’이 나돌기도 했다(나중에 헛소문이었음이 밝혀졌지만…). 그만큼 충무로가 장나라의 브랜드에 매혹을 느꼈다는 얘기다. <오! 해피데이>가 장나라의 데뷔작으로 낙착되면서, 영화를 통해 ‘대단한 변신’을 시도할지 모른다는 기대와 우려는 한풀 꺾이게 됐다. <오! 해피데이>는 장나라의 스타 이미지의 자장 안에 놓인 영화이기 때문이다.

“제가 갖고 있는 이미지가 그렇잖아요. 삶의 굴곡이 있다기보다는, 그냥 어리고 재밌는 얼굴. 그런데 지금 여기서 변신을 시도한다면, 저한테도 무리이고, 보시는 분들한테도 부담이 갈 거예요. 뭘 하더라도 반응은 양분되게 마련이죠. 영화 출연하고 나니까, 많이들 그래요. 왜 변신 안 했냐고. 제가 완전히 다른 걸 시도했다면 또 그랬겠죠. 왜 어설프게 변신했냐고. 십수년 동안 같은 스타일의 다른 연기를 하는 분들이 많아요. 저는 이제 겨우 4편째인데, 이미지 고정 운운하는 건, 너무 이른 판단인 거 같아요. 커가면서 저도 조금씩 배워가고 변해가겠죠. 짠짜라잔~ 하고 변신하기는 싫어요.”

이제 영화로 데뷔한 장나라의 생각이 궁금해진다. 장나라에게 영화는 무엇일까. 어떤 고민과 야심을 품고 있을까. 그러나 이렇게 심각한 질문으로 명랑한 그녀를 고문하기 전에, 되돌아봐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장나라는 연기자이기 이전에 가수다. 그녀는 <뉴 논스톱>에 출연한 것이 ‘가수 장나라’의 돌파구이자 발판이었다고 서슴없이 말한다. 그러고보니, <내 사랑 팥쥐>와 <오! 해피데이>의 배경에는 어김없이 장나라의 노래가 흘렀다. 장나라의 노래는 연기와 세트이고, 장나라는 그것을 하나의 맥락으로 이해하고 있다. “노래도 연기고, TV 연기도 연기고, 영화 연기도 연기잖아요. 전에 해왔던 일과 영화가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생각이 없어서 그런 건 아니에요. 물론 다른 분야에 도전하는 거니까, 어떻게들 보실까, 걱정되고 신경쓰이긴 하죠.”

장나라는 요즘 영화가 ‘잘돼야 할 텐데’ 하는 걱정뿐이란다. 당일에 대본받아 정신없이 촬영하고 헤어지던 TV 현장과 달리 많은 사람들이 느린 호흡으로 오랫동안 함께한 작업인지라, 대표선수격인 주연배우로서 흥행과 비평에 많은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신경성 소화불량과 급체 증상이 잦아, 양쪽 엄지손가락이 바늘 구멍으로 하얗게 헐었을 정도다. 스스로를 엔터테이너가 아닌, 좀더 광범위한 의미(노래도 연기다)의 ‘배우’로 인식하고 있는 장나라의 고민은 쭈욱 계속된다. “여성스럽고 어른스러운 생김새였으면 좋겠다는 생각 많이 해요. 그리고 좀더 성격이 좋았으면 좋겠어요. 저, 생각이 많거든요.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순수하지만은 않아요. 계산도 잘하고, 영악하고… 보기보다 똘똘하답니다. (웃음) 저 되게 여우예요. 근데 여우라는 말 듣는 건 싫더라고요. 나쁜 생각 안 하고, 좋게, 열심히 살려고 노력해요.”

장나라를 만나기 전, 촬영기자와 모종의 계획을 짰었다. 어디에서든 볼 수 있는 장나라의 모습은 담지 말자, 낯설고 새로운 걸 끄집어내보자고 의기투합을 했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일정도 바빴고, 장나라도 몇 순간을 제외하곤 거의 친숙한 표정과 목소리로 응대했다. 어느 누구도 요구하지 않았을지 모르는 장나라의 ‘이면’은, 그녀 자신도 아직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거나 앞으로 공들여 만들어나가야 하는 것일 수 있다. “나중에 크면”, “좋게”, “열심히”라는 표현을 유난히 자주 쓰는 장나라는, 그러니까 아직은 진행형의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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