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들꽃 하단의 파릇한 새싹,<동승> 배우 김태진
2003-04-16
글 : 박혜명
사진 : 정진환

또랑한 눈빛은 그대로였지만, 까무잡잡한 보통 아이 태진이는 <동승>의 도념보다 더 건강하고 밝아 보였다. 그러니 지금 저 평상복 차림의 태진이를 자연스럽게 도념으로 만든 것은 치렁한 회색빛 스님 복장만이 아니라, 주변인들이 칭찬하고 또 평소엔 저렇게 감추어진 그의 재능이겠구나 쉽게 믿어졌다. 그래서인가. 어느 한곳에 시선을 고정하지 못하고 낯선 집에 들어온 강아지처럼 불안한 기색을 온몸으로 드러내던 태진이는, 의외로 말이 쉽게 통하는 아이였다.

<육남매> <이야기 속으로> 등 TV에 제법 얼굴을 알린 태진이는 타고난 쑥스러움을 털어내느라고 MTM을 다니면서 연기 세상과 만났다. 유치원 다닐 때 “오늘 발표 잘했냐”고 묻는 엄마한테 “‘쑥’자로 시작하는 것 때문에 잘 못했다”고 말했단다. ‘쑥’자로 시작하는 건 ‘쑥스러움’이다. 당시 유치원생의 표현치고 대단하다 싶어 물어봤더니, 어렸을 때부터 책을 많이 읽었다고 했다. “그럼 요즘 읽는 책이 뭐니” 하고 숙제 검사하는 선생님처럼 묻자 <햄릿>과 <로미오와 줄리엣>이라고 한다. 그리고 여타 중학생들처럼 게임을 좋아한다. 방과후 집에 돌아오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메신저로 친구들과 채팅하는 건, 평범한 태진이의 또 다른 일과 중 하나다.

<동승>에 캐스팅되면서 평범한 태진이의 일상은 많이 달라졌다. 울면서 안 한다고 버텼던 삭발 뒤, 친구들은 야구모자 속에 감춰진 태진이의 반질한 머리를 볼 때마다 “빡빡아, 머리 감자”라고, 당시 유행하던 샴푸 광고를 따라하면서 짓궂게 굴었다. 촬영기간이 무한정 길어지면서 소풍이나 수학여행도 여러 번 포기했다. 이때 속상했던 태진이를 달래려고 어머니는 수학여행비를 고스란히 용돈으로 주셨다. 그래도 ‘배우’ 태진이는 촬영장에서, “상대방이 말하는 걸 알아야 자기 대사도 할 수 있어서” 상대역 대사까지 외워뒀다가 틀리면 알려줄 만큼 성실했고, “쉬워서” 잘된 것 같다는 우는 연기는 나중에 자기 자신도 감동이 돼서 울었을 만큼 몰입했다.

촬영기간 동안, 날씨는 종종 추웠고 또래친구도 없는데다 산속에 박힌 절 주변엔 혼자 놀 거리도 딱히 없었다. 그래서 촬영은 힘들었지만, 그는 연기를 좋아한다. “<동승> 같은 영화는 힘들어서 다시 못 찍고요, 드라마가 더 편해요. 덜 지쳐요. 고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는 연기 계속할 거예요.” <동승> 이후로 또 스님 하자는 제의가 들어왔지만 이젠 악역이 해보고 싶다고 했다. “저는 안 그런 면이 있는데 주위에서 항상 착하게만 생겼다고 그러거든요.” 존경하는 연기자는 조재현이다. 잘생겼고 멋있는데다, 드라마에서 볼 때마다 연기변신을 하는 것 같아서.

동글동글한 얼굴에 썰렁한 얘기에도 정신없게 웃어대니 아직은 어리고 순진한 소년이지만, 그의 이야길 듣고 있으면 분명 생각이 깊은 ‘배우’이기도 했다. 친구 사귀는 걸 좋아해서 태진이는 친구가 많다. 쑥스럽지만 “친구 하고 싶은 애한테는 먼저 가서 펜 빌려달라고 그러면 된다”고 한다. 그러나 곧 태진이한테 펜 빌리겠다고 올 친구들 감당하는 것도 벅차게 될지 모른다. 그것도 전국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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