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인터뷰] <똥개>의 정우성
2003-04-18

정우성(30)이 눈에 힘을 뺐다. 최근 배우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망가짐'과는 근본적으로 달라 보인다. 거부감이 느껴질 정도로 과장돼 보이지 않는다. 17일 오후 영화 <똥개>의 촬영이 진행 중인 경남 밀양에서 만난 정우성은 줄무늬 트레이닝복에 후질근한 면티, 더부룩한 수염, 기름기 가득한 머리에 늘어지게 하품하는 모습까지 소도시의 한심한 청춘인 주인공의 모습 그대로였다.

<똥개>는 <무사> 이후 2년만의 복귀작. 데뷔 10년차를 맞은 그에게 <똥개>의 '철민'역은 처음 맞는 연기 변신의 기회다.

"집 지키는 똥개 있잖아요. 그런 것 같더라고요. 원래는 순하지만 가끔 한번씩 짖고 아무 생각 없이 지내다 자기 밥그릇 건드리면 화내는. 동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개(犬)가 걔(그애)예요."

사실 <비트>나 <본 투 킬>, <러브>와 <무사>에서 그가 보여준 모습은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인간' 보다는 고독한 반항아의 모습.

"무슨 복제인간이었나봐요. 가족도 없이 혼자만 살고 반항만 하는. 여태껏 '인간' 정우성에 맞는 영화를 못 만난 것이죠. <똥개>는 따뜻한 가족의 이야기가 녹아 있는 게 마음이 듭니다."

형사 반장으로 바쁘기만 한 아버지와 아파서 내내 누워만 있다 돌아가신 어머니 밑에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철민은 꿈도 없고 하고 싶은 일도 없는 한심한 청년. 청소나 빨래, 바느질 등 집안 살림이 유일한 하루 일과였지만 어느날 이마저도 집에 새로 들어온 여자아이 '정애'(엄지원)에게 빼앗긴다. 전직 소매치기 정애는 소매치기를 그만두는 조건으로 철민의 집에 들어오고 비슷한 처지의 두 사람은 서로에게 호감을 갖는다.

<똥개>의 '철민'이 <비트>의 '민'이나 <무사>의 노비 '여솔', <본 투 킬>의 킬러 '길' 등 예전의 배역들과 다른 것은 감정 변화가 많은 캐릭터라는 사실.

그는 "한 신 안에서도 웃다가 삐지고 또 화도 내고 싸우기도 하는 성격이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인물이니만큼 자신의 연기력을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라는 것.

이 영화에서 그의 연기력을 시험할 수 있는 또 다른 기준은 바로 사투리 연기. 경남 밀양의 토박이 '철민'을 자연스럽게 연기하기 위해서는 어색하지 않은 사투리가 필수적이다. 크랭크인 후 한달 정도 지난 현재까지 그의 사투리 연기는 곽감독으로부터 OK사인을 받고 있다. 곽감독은 스스로가 강사가 돼 "체계적이고 빡신" 사투리 교육을 시키고 있다.

"내가 한국말로 연기한 것 맞나, 하긴 했는데 제대로 한 것이 맞나. 걱정이 떠나지를 않습니다. 촬영이 끝나서 숙소로 가는 도중에도 '그라모, 그라모…' 하면서 혼자 중얼거릴 정도죠"

정우성은 지난 2년여간의 공백기간 동안 몇 편의 CF 출연과 영화 연출 준비를 해왔다. 딱히 마음에 드는 영화가 없어서 보냈던 공백기가 연출 수업을 받는 데는 큰 도움이 됐던 것.

god의 노래 세 편을 배경으로 만든 뮤직비디오 을 연출해 지난해 미장센단편영화제에서 상영했으며 그동안 준비했던 감독 데뷔작도 현재 시나리오 작업 단계까지 진행됐다. "장르성이 짙은 사랑이야기예요. 액션도 좀 있고. 제가 출연해보고 싶었던 이야기예요. 직접 출연할 생각은 아니지만요. 앞으로는 연출과 연기를 병행해나가고 싶습니다"

그는 곽경택 감독을 "진득하고 의리있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등장인물의 감정을 능수능란하게 가지고 놀 수 있다"는 것이 배우 정우성이 보는 곽감독의 장점.

연기생활 10년을 맞아 변신을 꾀하는 정우성에게나 <챔피언>의 흥행 저조와 지난해 불미스러운 송사에 휩쓸린 곽감독에게나 <똥개>는 각자의 영화 인생에서 어떤 작품 못지 않게 중요하다.

장동건에게 연기자의 옷을 입혔고 유오성과 만나 관객들을 '소름'끼치게 하는 연기를 만들어 냈던 곽경택과 '똥개'로 눈에 띄는 변신을 한 정우성이 어떤 화학반응을 일으킬 수 있을까. 영화가 개봉되는 8월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밀양=연합뉴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