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수리 마수리, 손만 대면 뚝딱
두 시간 가깝게 ‘지구를 지키’는 과정을 보는 것은 차라리 고통이다. 처음엔 ‘생또라이’ 병구의 외계인 감별법과 이러저러한 납치과정을 낄낄거리며 받아 넘기다가 나중엔 울컥 숨이 막혀 도저히 목구멍으로 안 넘어가는 단계에 이르기 때문이다. 지지리도 복도 없는, 부모와 애인의 비정상적인 죽음과 머무는 곳마다의 치욕적인 폭력을 감내하다 결국 외계인 납치, 사살 해프닝으로 기계적인 삶에 종지부를 찍으려는 병구의 삶은 속상하기도 하고 울적하기도 하다. 점증적으로 무게를 늘려가는 스토리에 반해 장면마다 등장하는 사이언티픽한(그러나 철저히 어설프고 촌스럽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지한) 소품들은 그래서 달콤한 맛나 같다. 외계인과의 교감을 차단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헬멧에서는 조잡한 안테나가 빙빙 돌아가고, 고문의자에는 친절하게도 변기가 딸려 있다. 이어폰을 닮은 뇌파 감지기나 UFO에 탄 외계인 왕자(백제 의자왕과 비슷한 복장을 하고 있다)의 옥좌, 무시무시한 살인무기로 등장하는 로봇팔 등은 세상에 있는 듯 없는 물건이다. 이런 물건들은 도대체 누가 만들었을까.
<지구를 지켜라!>의 미술부에는 소품팀과 특수소품팀이 나란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이면 소품팀 몫이고, 구할 수 없으면 특수소품팀 몫이라는 정재민(33)씨의 설명이 명쾌하다. 그렇다면 이 모두가 특수소품팀의 작품이라는 게다. 사실 팀이라고 말하기엔 낯이 간지럽다. 정재민씨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면서 만들어낸 결과다. 최근 <마루치 아라치> 소품을 맡으면서, 부산의 후배도 올라오고 하여 4명으로 이뤄진 팀이 만들어졌다. 그전의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과 <화산고>, 그리고 <지구를 지켜라!>는 정씨 혼자 일구어온 텃밭이다. 부산예고에서 조소를 전공한 정씨는 전기 다루는 거나, 자잘한 소품 만드는 품새가 천성 ‘장이’다. “영화는 잘 모르기도 하거니와 기계 만지고 물건 만드는 게 그저 좋아서 시작한 일”이라고 말하는 것도 그를 잘 설명한다.
<지구를 지켜라!>의 미술감독인 장근영씨와는 예고 동창으로 얼마 전까지는 홍익대 근처 사무실에서 같이 있다가, 일산의 작은 사무실을 따로 차려서 소품팀과 함께 생활 중이다. 처음 미술감독이 제안한 교감차단 특수헬멧의 원안은 양철깡통을 두드려서 등 몇개를 단 게 전부였다. 아무래도 밋밋하다 싶어 돌아가는 조그마한 안테나를 단 건 정씨의 아이디어다. 고문의자의 경우 시중 이발소 의자에다 구멍을 뚫어 양변기를 밑에 넣자는 생각이었지만, 변기의 위 테두리가 선명하게 보이지 않아서 의자를 직접 짰다. 로봇팔은 철로 제작한 탓에 무게와 양감이 기중기를 연상케 했다. 동력을 연결하기에 무리가 있어서 사람이 직접 움직였지만 생각보다 공이 많이 든 소품. 그는 현재 <마루치 아라치>에 등장할 검(劍)을 제작하느라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는 중.
프로필 1971년생부산 예술고등학교 조소과 전공<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 <화산고> <지구를 지켜라!> 특수소품 담당스포츠 투데이(장동건, 한고은 편), 밀리오레 광고, TG 뮤직비디오 소품 담당현재 <마루치 아라치> 소품 제작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