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안 매켈런(64)의 매그니토는 인간의 형상을 한 자석이다. 플라스틱 감옥에서 수모를 겪던 그가 우매한 인간의 피를 마에스트로의 손짓으로 빨아내 탄환을 빚어내고 장엄하게 탈옥하는 순간, 호모 사피엔스인 우리의 심장을 도는 피도 종족을 배신하고 매그니토의 손끝을 향해 들끓는다. “전쟁은 시작됐다”고 뇌까리며 고문에 지친 눈을 희번덕거리면, 건공중을 휘젓는 그의 눈길을 따라 지축이 삐걱거린다. 그런 매그니토가 간수에게 얻어맞는 장면은 어떤 선한 엑스맨이 공격당하는 순간보다 보기 괴롭다. 그는 지구를 집어삼키려는 동기가 ‘과대망상’ 네 글자로 일축되는 뭇 악당과는 리그가 다르다. 어린 시절 유대인 포로수용소의 지옥에서 벼려진 그의 인간 혐오는 만만히 반박당할 수 없는 신념이며 그의 격문은 귀에 달라붙는다. “인간들이 어느 날 당신과 아이들을 죽이러 들이닥칠지 모른다는 생각에 한밤중에 소스라쳐 깬 적 없나?” 원한의 발로만은 아니다. 그는 돌연변이가 역사법칙에 의해 도래할 사회구성체의 주역이라 믿고 행동하는 진보 사관의 신봉자다.
이안 매켈런이 연기의 자력을 처음 몸 안에 들인 것은 맨체스터 오페라 하우스에서 <피터 팬>을 관람한 세살의 어느 날이었다. 본인이 자주 분하는 호전적인 인물들과 딴판으로 다툼을 싫어하는 매켈런은 10살 되던 해 학교 운동장에서 생애 마지막 싸움을 치렀다. 여럿의 주먹에 홀로 맞선 소년은 바닥에 드러누워 울어버리는 것으로 방어를 대신했다. 아이들은 가짜 눈물이라며 욕설을 퍼부었다. “하지만 내 눈물은 진짜였다. 그 힘들었던 날, 나는 연기의 핵심을 터득했다. 진짜 감정이 어떤 관객에겐 가짜 눈물만큼 설득력이 없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13살에 <십이야>의 맬볼리오 역으로 셰익스피어극에 입문한 이후 한번도 발을 헛딛지 않고 로렌스 올리비에의 상속자로 일컬어진 이안 매켈런에게, 무대는 ‘거기 있는 한 아무것도 잘못될 수 없는’ 자궁 같은 장소다. 소소한 영화배역을 거쳐 <리처드 3세>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영화 커리어를 재개했을 때 이안 매켈런은 카메라에 적응하기 힘들었다고 말한다. 설마! 그래봤자 바람처럼 빠른 신 머큐리의 발목에 모래주머니가 달린 정도의 불편이었으리라. 카메라를 무릎 꿇린 노장은 <엑스맨>과 <반지의 제왕>에서는 블루 스크린과 모형을 때려눕혔다. 아니, 블루 스크린과 마네킹이 그의 앞에 서면 주디 덴치나 크리스토퍼 리가 부럽지 않은 명우로 둔갑했다.
돌연변이가 어떤 존재냐고 묻는 <엑스맨> DVD의 인터뷰에서 이안 매켈런은 이렇게 답했다. “나, 이안 매켈런이 바로 뮤턴트요.” 1988년 커밍아웃한 이후 게이 액티비스트로 살아온 예술가의 대답은 그 한마디로 족하다. 누구도 따로 묻지 않았기에 49살까지 성적 정체성을 서랍 속에 보관했던 매켈런은, 마거릿 대처 정부가 ‘섹션 28’ 입법으로 동성애의 공론화를 범죄로 규정하려하자 <BBC> 라디오를 통해 커밍아웃하고 인권단체 스톤월을 공동설립했다.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요즘 매켈런은 “가끔 조용한 벽장 속으로 돌아가고 싶다. 하지만 그 안은 다른 배우들로 꽉 차서 끼어들 틈이 없다”는 농담을 입에 올리기도 한다. 모든 돌연변이 중 자기의 초능력과 가장 평화롭게 공존하는 매그니토처럼, 매켈런은 커밍아웃 이후 더욱 유창한 배우가 됐다. 그리고 그 즈음 안온한 무대를 벗어나 험하고 넓은 할리우드 탐험을 시작했다. 매켈런이 인정하듯 그가 카메라 앞에서 완전한 제임스 웨일, 완전한 간달프가 될 수 있었다면 그건 카메라 밖에서 그가 완전한 이안 매켈런으로 살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영화가 너무 늦기 전에 이안 매켈런을 얻은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의 연기를 후세에 보여줄 수 있게 됐으니까. 그렇다면 본인의 의견은? “편하지요. 셰익스피어 연극에서는 왕 역할이 아닌 다음에야 세 시간을 내리 서 있기 일쑤니까요.” 그렇다면, 만장일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