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로맨스‥ 아니 그보다 휴머니즘,<별>
2003-05-03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 Story

전화국 엔지니어로 일하는 영우(유오성)는 강아지 알퐁스만을 친구 삼아 살고 있는 외로운 고아이다. 영우는 동네 수의사 수연(박진희)을 짝사랑한다. 알퐁스를 핑계로 동물병원을 드나들던 영우는 어느 날 용기를 내어 데이트 신청을 한다. 그러나 장소는 엇갈리고, 돌아오는 길에 영우는 뺑소니범으로 몰리게 된다. 도시의 삶에 혐오를 느낀 영우는 소백산 중계소의 파견을 자청한다. 그리고 수연이 그를 찾아온다.

■ Review

영화 <별>은 수선스럽게 치장되어 있지 않은 그 제목만큼, 세상의 복마전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순수한 남자 영우를 주인공으로 한다. 그는 동물을 사랑할 줄 아는, 그리고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 쉽게 지나칠 수 없는 ‘착한 남자’이다. 그가 사랑을 느낀다. 자신이 사랑하는 강아지 알퐁스를 사랑할 줄 아는 여자 수연을 그 또한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같은 성향을 지닌, 순진한 남자와 명랑한 여자 사이의 사랑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강아지를 핑계로 동물병원을 들락거리고, 가끔은 퇴근하는 그녀의 가게 문을 같이 닫아주고, 마침내 연극과 영화와 콘서트 티켓 모두를 준비해서 설레는 마음으로 데이트 신청을 하는 그런 평이한 만남과 수순에 바로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는 것이라고 <별>은 말한다.

여기에는 문제가 없다. 문제가 되는 건 영우의 심성이다. 그는 도시의 물욕에 대응할 만큼의 내성을 갖고 있지 못하다. 사람들은 그런 영우의 심성을 이용하려든다. 뺑소니 차량을 목격하고 그냥 지나치지 못한 채 도움의 손길을 뻗은 영우가 가는 곳은 결국 철창이다. 산 아래에서의 시선은 그를 선의의 조력자로 인정하기보다 뻔뻔한 범죄자로 몰아붙인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이 살아야 할 곳을 찾아야만 한다. 되도록 사람들과 마주칠 일이 없고, 원인과 물증의 이해관계에 얽힐 필요가 없는 소백산 중계소에 올라서야만 한다. 산자락에 뿌려져 있는 눈벌판, 그 위로 뻗어 있는 창공, 그 산 정상에서 통신의 양치기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전임자 진수(공형진)의 표현대로라면 이곳에서의 삶은 “미쳐버릴” 일이지만, 영우는 오직 여기에서만 무결할 수 있다. 산 아래에서 산 정상으로라는 영우의 행로를 뒷받침하는 동기들이 성급해 보이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사건이 일어나서 어쩔 수 없이 산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산의 풍경 안으로 회귀해야 한다는 전제 조건 하에 사건들이 부여되어 있다.

영우가 산으로 가야만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별>과 근래 여타 멜로드라마와의 차이 때문이다. <별>은 남녀의 로맨스를 인간들 사이의 인간애라는 좀더 넓은 ‘심성’의 관계로 보여주려 한다. 예를 들어 영우는 엇갈린 데이트로 인한 수연과의 실패한 사랑 때문에 낙담한 마음으로 산중 생활을 택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평소처럼 집으로 돌아오던 중이었고, 뺑소니사고를 목격한다. 그리고 도리어 뺑소니범으로 몰린다. 도입부의 흐름을 이어가자면 그와 그녀 사이의 어떤 전환이 이뤄져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 흐름을 뒤집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별>은 기필코 인간애의 광의적 심성으로 나아가려 한다. 영우는 이뤄지지 못한 사랑 때문이 아니라, 인간들에 대한 실망감으로 유배를 자청한다. 남녀의 사랑으로 시작했던 영화는 인간애라는 더 넓은 틀을 가져오며 전환을 맞는 것이다. 이 전환은 갑작스럽다. 동의할 수 없다는 생각을 일으키는 것은 로맨스를 따라가는 관객에게 갑자기 인간애의 중요성을 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걸 또한 버리고 싶어하지 않는다. 당연히 여기에는 단점과 장점이 따라붙는다.

영화 속에서 가장 불필요한 부분은 영우의 부모로 보이는 함백의원 노의사와 그의 아내의 플롯이다. 이들은 예전에 어린 아들을 잃어버렸고, 고아로 성장한 영우는 줄곧 이들의 아들일 것이라는 추측을 만들어낸다. 가장 불편한 플롯으로 기능하면서도 이들이 꼭 필요했던 이유는 이 영화가 로맨스가 아니라 휴머니즘에 더 큰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점에 근거한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도 영우와 수연의 사랑은 그저 모든 사랑을 대변하는 초입부일 따름이다. 이제 막 시작할 그 관계를 낙관적으로 보살피는 것은 바로 노의사의 희생정신이다.

그러나 영화의 전반적인 리듬은 이 노부부의 플롯에 의해 서술상 심하게 흔들리는 위기를 갖는다. 오히려, 영우가 살고 있는 중계소의 공간화는 그 ‘심성’을 보여주기 위한 최선의 처방인 것처럼 보인다. 누구라도 영우가 살고 있는 공간이 아름답게 지어진 동화 속 세트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중계소 앞에서 영우는 서너 걸음 바깥으로 벗어나지 않는다. 벗어날 때는 어김없이 컷되어 실제의 풍경으로 들어선다. 눈에 띠게 인공적인 세트와 자연풍경 사이의 편집은 쉽게 어색한 점으로 지적될 수도 있다. 그러나 오히려 이것이 이 영화의 진심이다. 현실의 도시생활에 어울리지 않는 심성을 가진 영우의 ‘순수한’ 심적 공간 재현을 위해, 영화는 부조화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굳건히 인공과 자연의 풍경을 대비시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인간애를 표현하기 위해 선택된 노의사 부부의 플롯이 영화의 짜임새에 위기를 가져오지만, 그 내부의 원칙을 지킨 공간의 구성은 미덕으로 인정받을 만하다. <별>은 이 두개의 모험을 감행함으로써 위기를 가져오고, 진심을 약속한다.

:: 진수 역 우정출연한 공형진

유쾌한 원맨쇼

소백산 중계소. 구시렁구시렁 불평을 늘어놓으면서 수염을 깎던 사내는 산을 올라오는 영우를 보고 얼마 만에 사람 만나는 거냐며 절반쯤 깎다 만 수염을 내밀며 포옹을 한다. 그동안 산속에 갇혀 살아 미칠 것 같았다는 진수. 그 역을 우정출연한 공형진이 맡았다. <별>에서 공형진이 맡은 역할은 슬픔에 가득 찬 영우 옆에서 쉬지 않고 떠들면서 재잘거리기. 그러면서 관객도 함께 웃기기. 공형진은 충분히 그 역할을 다하고 사라진다. 저것도 애드리브가 아닐까, 뱉어내는 대사마다 의심이 들 정도로 공형진은 짧은 시간 나와서 많은 웃음을 심어놓는다. 산을 타고 내려가며 소리를 지르는 영우를 보면서 진수가 하는 말. “드디어 미쳤군. 미쳤어.” 그렇게 조용하고 말없는 영우 옆에서 특유의 고저로 떠들면서 간섭하고, 또 술주정하고, 재롱부리는 진수는 낮은 흐름을 유지하는 <별>에서는 매우 특별한 역할인 셈이다. 사실, 영우의 감정과는 많이 대립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가도, 그만의 원맨쇼만큼은 영화의 다른 구석을 보여준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