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로맨틱한 마피아의 심각한 매력, <멕시칸>의 제임스 갠돌피니
2001-05-08
글 : 이영진

사랑받지 못해 안달인 분들. 조롱이 아니라 진심어린 찬사를 듣고 싶다면, 여기 이 거구의 중년 사내를 보라. 사실 외모만 놓고 보면 제임스 갠돌피니(40)에게 쏟아지는 여성들의 구애는 이해하기 힘들다. 골깊은 두 줄기 주름살은 애교에 가깝다. 듬성듬성한 머리카락과 누구에게 한대 얻어맞은 듯 뭉툭한 주먹코와 세월을 이기지 못해 처진 뱃살에 비하면 말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에게 단순한 호감 이상의 감정을 순순히 품는다. 심지어 “섹시하다”는 표현까지 아끼지 않는다. “저는 갠돌피니의 광적인 팬이에요. 그에 대해서는 좋은 말만 해도 밤을 꼬박 샐 정도니까.” <멕시칸>에 함께 출연한 줄리아 로버츠까지 충실한 ‘신도’가 됐다고 고백한다. 하긴 <멕시칸>에선 그럴 만도 했다. 좌충우돌 제리(브래드 피트) 곁을 떠난 입심 좋은 샘(줄리아 로버츠)은 인질범 르로이에게 잡히는 신세가 되지만 결국 그의 죽음 앞에서 오열을 터트리지 않던가. “섹스를 섹스로만 받아들이면 안 돼”라고 인질의 사생활에 끼어들어 진지하게 충고하질 않나, 게이임을 들킨 뒤 “현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며 ‘12년’ 만에 눈물을 짜내지 않나. 열패감과 잔인함을 힘들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오가며 연기하는 이 남자의 묘한 눈빛, 강한 자력을 뿜는다.

HBO의 TV시리즈 <소프라노스> 의 주인공이자 우울한 마피아 보스인 토니 소프라노 역시 결과적으로 갠돌피니 덕을 톡톡히 봤다. 조직 때문에 가정을 잃을까봐 노심초사하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로 매번 혼절하는 이 남자는 “나도 한때는 프로이트를 읽었다”고 자신만만해하지만 이내 정신과 의사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고서 눈물을 찔끔거린다. 하지만 거리 한가운데서 자신의 돈을 떼먹은 이를 보면 차로 위협하는 것만으론 분이 풀리지 않아 기어코 콧등을 내려앉게 만드는 그런 부류다. 그를 보기 위해 1주일에 1천만명의 미국인들이 리모콘을 꼭 쥐고서 TV 앞에 앉는다. 물론 뉴저지 출신의 이 배우 역시 얼마 전까지 자신에게 아직 ‘멋진 인생’이 남아 있을 것이라곤 예감하지는 못했다. 대학 졸업 뒤 맨해튼에서 경비원, 바텐더, 나이트 클럽 매니저를 전전하던 그가 시드니 루멧 감독의 <유대교 살인사건>에 얼굴을 내밀고,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로 뉴욕의 무대를 밟은 게 92년. 그의나이 서른이 넘어서였다. 이후 <앤지> <겟쇼티> <크림슨 타이드> 등 열다섯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했지만, 할리우드에 당당히 명함을 내밀 만한 정도는 아니었다. 늦깎이라는 자위도 슬슬 부담이 되던 때, 그를 구한 건 ‘토니’였다.

이제 방송출연 개런티가 2년 동안 1천만달러에 이르지만, 정작 그의 뒤늦은 발동이 여기서 꺼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없다. 올해 벌써 예약된 영화만 해도 3편. 코언 형제의 신작 <바버 프로젝트>(The Barber Project)와 <멕시칸>을 잇는 고어 버번스키의 영화 <나를 잡아봐, 가능하다면>(Catch Me If You Can) 등에 출연하기로 한 것. 그런데도 본인은 여전히 ‘쌩’하다. “나는 내가 확실한 직업을 얻었다고 생각지 않는다. 다만 데이비드 체이스(<소프라노스>의 각본·연출자)와 아침식사를 하면서 같은 고향 출신이라는 것을 알았다는 게 속시원할 따름이다.”

르로이와 갠돌피니| 촬영장에서 난 심술난 영감 같았다. 오히려 줄리아가 내 분위기를 업시켜주려고 노력했다. 사실 난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편이다. 스스로 흥미로운 사람이라고 생각지도 않는다. 다만 흥미로움을 가진 이들을 경험하기 위해서 카메라 앞에 설 뿐이다.

토니와 갠돌피니| 놀란 건 당연했다. 난 토니 부류의 사람들과 어울리는 이에게 역할이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아마도 내가 (캐스팅된 건) 싼 배우였다는 게 큰 이유였던 것 같다. 시작하고 나서 얼마 뒤에 뉴욕과 뉴저지의 조직원들을 만나서 도움을 받았다. <소프라노스>로 운을 뗀 뒤 도움을 청했더니, “물론”이라고 친절하게 답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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