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히사이시 조 음악의 정점,<모노노케 히메> OST
2003-05-08
글 :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그런데 하나의 영화는 누구의 것일까? 모든 스탭들의 이름은 기억에서 지워지고 주인공, 또는 감독의 이름만이 남아 영화의 제목과 함께 세월을 유영한다. 그렇다면 영화는 감독의 것, 주인공의 것인가? 사실, 도대체 이름으로 남는다는 것은 때로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가. 하나의 영화는 어느 누구의 것이 아니기도 하다. 내가 잘 아는 어느 영화감독은 “사람들은 모른다. 감독조차 모른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황야의 무법자>는 세르지오 레오네의 것인 줄 알지만 사실 그 영화는 엔니오 모리코네의 것이라는 것이다. 부당한가. 모리코네라는 이름이 또 다른 하나의 이름일 뿐이라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어느 경우 영화는 그 ‘음악’의 것이다.

<모노노케 히메>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1997년작이다. 하야오가 ‘은퇴작’이라고 선언했던 이 작품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가장 전형적인 구조물로 꼽을 만하다. 일본 특유의 토속신앙과 결부된 ‘정령숭배’에서 비롯하여 환경주의까지를 아우르고 있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부터 보이기 시작하던 ‘숲 숭배주의’와 그 대립항인 인간의 (파괴적) 욕망, 그리고 그 대결과 해소의 열망 같은 전형적인 구도가 아름답고 음습하고 깊고 박진감 넘치는 그림과 치밀하게 짜여진 내러티브를 통해 펼쳐진다. 너무나 전형적인 하야오의 것. 더는 갈 곳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은퇴를 선언한 것은, 이쯤 되면 동어반복이라 생각해서였을까. 그러나 그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약간 다른 구도를 가지고 컴백한다.

이 영화 역시 하야오와 뗄 수 없는 또 하나의 이름 히사이시 조가 음악을 담당했다. 히사이시 조의 활동력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거의 음악을 ‘쏟아낸다’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양의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다. 심지어 영화감독으로 메가폰을 쥐기까지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작품마다 어느 수준 이상의 완성도를 유지하고 있다. 바로 이런 점이 업계에서 그의 ‘신용’을 유지하게 하는 키 포인트일 것이다. 특히 하야오의 만화들에서는 그의 영화음악 중에서도 가장 심혈을 기울인 티가 나는 작품들을 영상에 붙여주고 있다. 그중에서도 <모노노케 히메>는 하나의 정점을 표시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그의 음악은 서양 악기편성을 중심으로 한 오케스트레이션을 쓴다. 그것이 바탕색이다. 그러나 히사이시 조는 늘 그 가운데에 두 가지를 더 섞는다. 하나는 전자음악적 사운드의 도입이다. 그렇게 곧이곧대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의 음악에는 늘 새로운 전자 사운드의 요소가 추가된다. 그만큼 그는 새로운 사운드를 향해 늘 마음을 열고 있다. 이 요소는 깊이라든가 신비, 혹은 공포 등을 표현하는 데 보이지 않는 재료로 동원된다.

그가 시도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혼합은 일본 특유의 토속적인 분위기를 첨가하는 일이다. 그가 첨가하는 토속적인 요소는 서양 사람들에게는 ‘이국취향’의 요소로 작용하고 자신들에게는 역시 일본 특유의 ‘퓨전 아이덴티티’를 확인케 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는 실제로 ‘숲’의 항목에서 이러한 토속성이 잘 기능한다. 결국에는 잘 짬뽕된 통속성을 발휘하고 있는 그의 기능주의는 그의 성공을, 나아가 일본 문화의 세계적 성공을 압축하고 있다. 그리고 <모노노케 히메>는 그러한 히사이시 조 식의 음악 생산법의 가장 세련된 결과물이다. 보이지 않는 깊은 곳에 사는 숲의 정령처럼, 이 영화는 정작 그의 음악이 움직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진짜 주인공은 보이지 않는 법이다.

관련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