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없으면 못 살아요.” 비타민부터 붕어즙까지 몸에 좋다는 건 가리지 않고 먹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못 버틴다는 박소현(32)의 스케줄은 그야말로 살인적이다. TV와 라디오를 넘나들며 고정적으로 진행하는 프로그램만 3개(한때 5개인 적도 있었다)인데다 요즘은 곧 방영될 드라마 촬영 준비까지 해야 하니 ‘숨’ 고르기조차 쉽지 않을 정도란다. 얼마 전, 데뷔 10년 만에 첫 출연한 영화 <화성으로 간 사나이>의 시사회가 열렸지만 참석하지 못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믹싱할 때 모니터로만 봤는데, 극장 가서 스크린으로 다시 봐야죠.”
여의도의 “스튜디오와 스튜디오”를 오가느라 바빴던 그를 강원도 산골로 ‘호출’한 건 극중 승재(신하균)를 짝사랑하는 선미라는 캐릭터. 우편배달부인 승재 얼굴을 한번이라도 보기 위해 각종 잡지를 구독하고, 자전거를 끌고 나타나는 승재의 손에 드링크제를 안기는 조금은 “푼수기가 흐르는” 인물이다. “영화하겠다고 맘먹고 덤빈 건 아니고. 시나리오를 받아서 쭉 읽는데 선미가 휴식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방송 일이라는 게 매번 새로운 사람, 사건만을 쫓다보니 저도 여유없이 살게 됐고. 그래선지 애틋한 감정을 품고 있는 시골 약사 선미가 돼보고 싶었어요. 드라마에서 맡은 역할들은 대부분 도회적인 이미지였으니까 더 그랬던 것 같고.”
촬영횟수가 많진 않았지만, 그는 현장이 불어넣어준 청량감을 잊지 못한다. 첫 촬영 때, 폭설을 뚫고 당도한 촬영현장에서 “가슴이 확 트이는 기쁨을 맛본” 기억은 쉽사리 잊지 못할 것 같다는 그는 “추위 때문에 피부가 조금 뜨는 걸로도 주위 사람들이 자기 일인 양 걱정해줘서” 황공했다고. “드라마는 때론 오버액션을 해야 할 때가 많아요. 영화에선 시선만으로도 되는 걸 드라마에선 턱까지 움직여야 하기도 하고. 영화가 좀더 디테일하고 자연스러운 것 같아요. 이목구비 뚜렷한 얼굴도 아니니, 스크린이 훨씬 유리해요.” (웃음) 사실, 그는 4년 전 한 영화에 출연키로 했다가 제작이 무산되는 바람에 출연이 무산되는 해프닝도 겪었다. “출연료가 얼마였는지는 정확히 기억 안 나는데, 돌려달라고 안 하던데요.”
대학 시절, 박소현의 꿈이 발레리나였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졸업을 앞둔 시점에 무릎을 다쳐 9살 때부터 시작했던 발레를 중단해야 했던 그는 한 방송사의 리포터 일을 시작한 뒤로도 한동안 무대로 돌아갈 생각뿐이었다. “7개 병원을 돌아다니다 2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서야 발레를 다시 하기 힘들겠다는 진단을 받아들였다”는 그는 그때 이후로 성격이 ‘낙천적’이 됐다. “발레할 때는 쇄골과 척추가 드러날 정도로 삐쩍 말랐었어요. 몸무게가 38kg이었다니까요. 거기다 말수도 없었고. 처음 MC 맡았을 때 친구들이 얼마나 걱정했는데요. 지금은 10kg이 더 쪘고, 정신도 많이 풍요로워졌죠.” 적응하는 데 걸린 10년에 비해 앞으로 10년은 “좋은 일이 더 많이 일어날 것 같다”는 그의 모델은 ‘김창완 아저씨’. 그처럼 생활도, 연기도 모두 즐길 수 있는 이가 됐으면 좋겠단다. 글 이영진 anti@hani.co.kr·사진 정진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