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예쁜 욕망,<아리랑> 배우 황신정
2003-05-21
글 : 김소희 (전 씨네21 편집장)
사진 : 이혜정

<아리랑>의 주연배우를 몽땅 공개 오디션에서 뽑은 이두용 감독은 아마도 황신정이 나타났을 때 무릎을 쳤을 것이다. ‘바로 저 얼굴이야!’라고. 눈이 구슬처럼 똥그래 보이는 인조 미인들과 달리 조선시대 미인도풍에 가까운 갸름한 이목구비는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슬픔을 머금은 깨끗한 여성” 영희를 표현하기에 제격이다.

그러나 황신정은 선입견에 바탕을 둔 몇 가지 예측을 배반했다. 우선 자신이 무엇을 잘하는가를 자랑하는 데 거침이 없었다. 영어와 중국어가 수준급이고, 스포츠는 볼링이 애버리지 140에 수영은 접영까지, 스노보드는 점프를 할 수 있으며 테니스도 잘 친다고 했다. 승마와 골프 또한 특기 목록에 적혀 있다. 짐작하듯이 한국의 교육제도는 스물세살의 대학 4학년생을 이런 식으로 키워내기 어렵다. 황신정은 외국에서 사업을 한 여장부 엄마 덕분에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싱가포르와 뉴질랜드에서 보냈다. “소외된 느낌 갖지 않으려고 영어 이외에 중국어와 일본어에도 도전했었다”는 성장 배경을 갖게 된 연유다.

3시20분이면 학교가 끝나고 4시면 모든 가게가 문을 닫아서 운동과 피크닉으로 오후를 보낸다는 뉴질랜드 대신 사람 많은 한국, 그것도 사람이 제일 많은 명동이 좋다고 했다.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고 욕망으로 가득 차서 빨리빨리 뭔가를 해야 하거든요.”

이 단아한 여성은 또 ‘사극 이미지’라는 주변 평가와 달리 “염색 하면 시대극에도 잘 어울린다”며, 99년 방송활동을 시작한 이래 많은 일들을 혼자 해왔다고 독립심을 자랑했다. 가로되 “혼자 사진 들고 가서 KBS 6층에 전해주는 일, 다른 여자 연기자들은 쉽지 않을걸요. 전 해요.” 아하! 스무살 언저리의 처녀가 ‘낯선’ 고국에서 시도하기에는 용기가 필요한 일이고 여기까지 왔다는 데 자부심을 가질 만했다.

황신정이 들려준 여러 이야기들은 그가 이제 막 프로 세계에 진입해서 사회화 과정을 겪는 단계임을 알게 한다. <아리랑> 찍는 동안 좋았던 점은 “사람들 앞에서 행동하는 법, 할말과 안 할 말, 들어서 옮길 말과 옮기지 말아야 할 말이 무엇인지 배운 것”이고, “스탭들이 없으면 내가 그 장면 안에서 인물이 될 수 없다”는 선배 연기자의 말이 감동적이어서 조수급 스탭들에게 물떠다 주는 일부터 했다는 것 등이 그 예다. 이미연, 송강호, 설경구, 미셸 파이퍼 같은 배우를 선망한다기에 본인의 연기가 궤도에 오르려면 얼마나 걸릴 것 같으냐고 물으니 “5, 6년? 어쩌면 10년?”이라고 답한다.

신예를 만나는 기쁨이란 깊은 상처의 흔적이 없는 패기와 욕망, 혹은 어떤 영화의 제목처럼 질투의 힘을 마주치는 데 있는 것이라면 황신정은 그런 의미에서 애틋했다. “자기가 열심히 하면 세상이 안 아플 것 같아요. 행복의 척도를 낮춰 생활하면 어둠을 볼 새도 없지 않을까요?”라고 말하는 이 신예는, 어둠을 보는 법을 익히느라 허겁지겁 하는 어설픈 나이보다는 확실히 행복할 것 같다. 아 참! 그에게 얼굴을 옆으로 돌리면 서구적인 윤곽도 나온다고 말해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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