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 정신과 의사 제롬(덴젤 워싱턴)은 걸핏하면 주먹을 휘두르는 수병 앤트원(데릭 루크)을 환자로 받는다. 억지로 병원에 끌려온 앤트원은 할말이 없다고 선언하지만, 제롬은 그가 입을 열 때까지 끈기있게 기다린다. 마침내 앤트원은 불행한 과거를 털어놓기 시작한다. 단 한번도 가족을 가져본 적이 없는 앤트원은 유일하게 의지했던 친구마저 잃은 채 홀로 세상에 던져졌다.
■ Review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몇년 동안 영화를 보고 울지 않은 적도 있지만, <앤트원 피셔>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고백했다. <앤트원 피셔>는 돌덩이가 아니라면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없는 영화다. 상처투성이 어린 소년이 아버지 같은 남자의 도움을 받아 과거와 대면할 수 있는 성인으로 자라난다는 평범한 이야기. 그러나 <굿 윌 헌팅>의 흑인 버전처럼 낯익은 이 여로는 실화이며, 분노로 주먹쥐었던 바로 그 손끝에서 생명을 얻은 것이다. 소니픽처스 안전요원으로 일하던 앤트원 피셔는 이 영화의 프로듀서 토드 블랙의 격려에 용기를 얻어 난생처음 시나리오를 썼다.
앤트원은 친어머니를 만나고, 아버지의 친척들과 추수감사절을 보내는 과정을 모두 시나리오를 쓸 무렵 겪었다. 그 때문인지 <앤트원 피셔>에는 태어나기도 전에 아버지를 잃고 태어난 지 두달 만에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아픔과 좀더 튼튼해진 어깨를 돌려 지난날을 바라보는 성숙한 시선이 함께 녹아 있다. 첫 번째 감독작으로 이 영화를 택한 덴젤 워싱턴은 손보지 않아도 충분히 드라마틱한 시나리오를 정직하게 대했다. 꼭 그 자신의 인상처럼, 감독 덴젤 워싱턴은 진중하고 성실하다. 앤트원이 아늑한 대가족으로 둘러싸인 식탁을 꿈꾸는 장면을 제외하면, 기교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아버지의 가족을 찾은 앤트원이 그토록 먹고 싶었던 집에서 만든 팬케이크 더미를 마주할 때, 성냥팔이 소녀의 환상같았던 그 꿈은 고된 생존의 보상으로 다가와 긴 울림을 남긴다.
오래 공들여 데뷔작을 만든 워싱턴은 주연배우로서도, 배우를 다루는 감독으로서도 나무랄 데 없다. 신인 데릭 루크는 버림만 받았던 앤트원의 고통과 호소에 미묘한 떨림으로 반응하면서 두 시간 가까운 영화를 책임졌다. 앤트원을 치료하고, 앤트원으로부터 위로받는 제롬 역시 워싱턴의 과묵한 연기에 힘입어 상투적이지만 진실한 인물로 다가온다. <앤트원 피셔>는 배우가 카메라 뒤에 섰을 때 가질 수 있는 장점에 충실한, 소박하고 적당히 무게있는 영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