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자신이 통제할 수도 인식하지도 못하는 상태,<어밴던>
2003-05-27
글 : 김종연 (영화평론가)
■ Story

졸업과 취업준비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명문대생 케이티(케이티 홈즈)는 2년 전 실종된 남자친구 엠브리(찰리 휴냄) 사건을 조사하려는 형사 핸들러(벤자민 브랫)의 방문을 받고 더욱 신경이 예민해진다. 경찰이 사망으로 종결지을 무렵 느닷없이 엠브리가 돌아오고 아무도 모르게 그녀 주변을 맴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케이티는 극도로 불안해진다.

■ Review

<어밴던>에서 공포의 진원지는 사람의 마음이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졸업을 앞두고 압박감에 시달리는 졸업생들의 총총한 발걸음, 경쟁심과 조바심이 만들어내는 신경질적인 공기를 푸르스름한 필터와 심도 얕은 화면으로 포착해낼 때부터 영화는 이것이 다루고자 하는 공포의 소재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한다. 영화 <트래픽>의 치밀한 각본을 써내 오스카 트로피를 안은 바 있는 스티븐 개건 또한 자신의 장기가 빠른 리듬으로 피와 섹스와 아드레날린을 쉼없이 퍼내게 만드는 여타의 캠퍼스 공포영화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대신 꼼꼼한 대사, 세밀한 영화 속 작은 부분들을 엮어서 심리적인 공포를 형상화하려는 쪽을 선택하면서 <어밴던>은 <스크림>이 아닌 <인썸니아>나 <더 홀>이 가는 길을 택한다.

평범해 보이는 타이틀, <어밴던>(abandon)이 ‘버리다’라는 동사의 뜻보다는 ‘자기가 통제할 수 없고 인식하지 못하는 어떤 상태’를 나타내는 명사의 뜻에서 정해졌다는 것도 그 점에서다.

다만 그 ‘어밴던’이 누구의 상태이냐를 숨기거나 유보하는 정도가 이 영화가 가진 서스펜스의 유일한 자원일 텐데 영화는 슬래셔의 피칠갑을 통한 충격효과를 쉽게 포기했던 것처럼, <식스 센스>의 반전에 단련된 관객을 놀라게 하겠다는 야심을 일찌감치 포기한다. 대신 뻔한 결말을 굳이 숨기지 않지만 부모에게 버림받았거나 여의었거나 한 심리적으로 결핍된 인물들이 만들어가는 관계의 지옥(inferno)을 섬세하게 보여주겠다고 선언한다. 케이티의 방문을 받는 형사의 손에 카뮈의 <이방인>을 들려준다든가 케이티가 누군가에게 시선을 줄 때 세심하게 그 표정을 클로즈업을 한다든가 하는 식이다.

그러나 결과는? 녹록지 않은 각본과 배우들의 호연, 매끈한 디테일이 주는 미덕에도 불구하고 <어밴던>은 미국 캠퍼스판 <데미지>가 되는 데는 실패한다. ‘관계의 지옥’을 보여주기에는 영화 속 모든 관계가 심리학 교본의 사례처럼 도식적이기 때문이다. 존재감이 떨어지는 상대역들과 케이티가 맺는 관계는 그다지 설득력 있는 화학반응을 보여주지 못하고 푸른색과 따뜻한 색의 색채대비로 영화를 둘로 가르는 <트래픽>에서의 세련된 수법도 폼나는 틀 이상의 효과를 내지 못한다. 의외성이 떨어지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결말이 머리로는 이해가 가지만 심정적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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