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호호홍… 행님들 와 연락도 없이 오셨능교.” 김유진 감독의 <와일드카드>를 본 사람이라면, 간드러지게 애교를 떨며 두 형사를 맞이하는 안마시술소 사장 도상춘을 잊지 못할 것이다. 형사들의 ‘이이제이’(以夷制夷) 전술에 투입돼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는 도상춘은 가끔 얄밉지만 미워할 순 없는, 그렇게 정이 가는 존재다. 영화관을 나가는 관객으로 하여금 “저 양반 대체 어디 있다가 나타난 거냐”는 질문을 던지게 한 이 ‘충무로의 뉴페이스’는 대학로의 흥행배우이자 연출가이며 극단 이랑씨어터 대표이기도 한 이도경(50)이다.
대학로 연기생활 26년째를 맞는 이도경은 1992년 <불 좀 꺼주세요>에 출연하면서 본격적으로 명성을 날리기 시작했고, 97년부터는 현재까지 상영 중인 <용띠 위에 개띠>로 흥행행진을 잇고 있다. 그동안 “극단 대표가 오디션 보러가는 게 좀 그래서” 영화에 출연하지 못하던 그는 <불 좀…>과 <용띠…>의 각본을 쓴 이만희 작가가 <와일드카드>의 시나리오를 쓴 인연으로 충무로에 문턱을 넘었다. 20여년 전 한 사극에 출연한 경력이 있긴 하지만, “순전히 경험 삼아 해본 거고 지금 생각하면 창피한 기억”인지라 그에게 <와일드카드>는 영화 데뷔작인 셈이다.
이도경은 이만희 작가가 그를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썼다는 도상춘이란 캐릭터를 이렇게 해석했다. “악역이라도 미움을 받아선 안 된다. 대신 연민을 느끼게 해야 한다.” 그는 고향인 경주의 사투리를 좀더 세게 발음하고, <용띠…>를 수년 동안 공연하며 익숙해져버린 콧소리를 곁들여 ‘매력’을 가미했으며, 쉽게 이랬다저랬다 하는 성격을 표현하기 위해 주변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그의 능력과 노력을 관객이 놓칠 리 없다. “인터넷 게시판에 어떤 젊은이가 나를 ‘늙고 귀여운 악동’이라고 표현했더라고요. 연기생활 이십몇년 만에 귀엽다는 말은 처음이네. 오홍….”
하지만 그가 아무리 대학로에서 소문난 배우라 해도 사실상 처음 접하는 영화현장은 낯설었다. 기자 시사회장에서 그가 “내가 기대했던 것에 비하면 40% 수준”이라고 한 것은 새로운 매체에 익숙지 않은 데서 빚어진 실수가 너무 아쉬웠기 때문이다. “더 웃길 수 있었는데…. 관객을 완전히 패대기칠 수 있었는데 딴죽밖에 못 건 것 같네.” 그가 시사회장과 개봉관을 모두 8번이나 찾아가며 영화를 보고 있는 것도 영화연기의 호흡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이도경에게 <와일드카드> 출연은 어린 날 꿈의 실현인 셈이다. 극장 영사기사에게 막걸리나 담배 같은 ‘뇌물’을 바치고 영사실에서 영화를 봤다는 그는 <시네마천국>의 토토 같은 유년기 속에서 스크린 배우의 꿈을 키웠고, 서울예대 영화과에 들어갔다가 신구의 연극을 보고 연극과로 전과하며 연극계로 향했다. “연기자가 되려면 우선 연극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고나서 영화를 해야지, 라고.”
물론 그의 진정한 바람은 영화건 연극이건 좋은 연기자로 남는 것이다. 때문에 이도경은 일단 무기한 상연 중인 <용띠…>에 최선을 다하면서 마음에 드는 영화가 나타나면 기꺼이 참여할 생각을 하고 있다. “사실 나는 아주 지랄 같은 것, 아주 희한한 것, 얄궂은 것, 독특한 걸 해야 직성이 풀려요”라고 말하는 그의 이마에 팬 주름이 실룩거리더니 다시 “오홍…” 하는 웃음이 터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