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아들 찾는 물고기의 액션 모험극,<니모를 찾아서>
2003-06-03
글 : 김혜리
■ Story

광대어 말린(앨버트 브룩스)은 아내 코랄과 2세들의 부화를 기다리던 중 상어의 습격을 받는다. 알을 보호하려던 아내는 상어 입속으로 행방불명되고 수백개의 알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기에게 말린은 니모라는 이름을 붙인다. 사건 이후 큰 바다를 무조건 겁내게 된 말린은, 한쪽 지느러미가 부실한 니모(알렉산더 굴드)를 과보호한다. 하지만 니모는 등교 첫날 잠수부에게 납치돼 시드니에 있는 치과의사의 수족관에 끌려가고, 슬픔으로 혼비백산한 아빠 말린은 평소의 심약함을 잊고 ‘니모 찾아 삼만리’ 길에 오른다. 말린이 단기기억상실증을 지닌 명랑한 파란 물고기 도리(엘렌 드제너러스)의 도움으로 상어, 심해어, 해파리의 위협을 뚫고 동호주 해류로 향하는 동안, 니모는 수족관의 새 친구들과 탈출을 모의한다.

■ Review

“<해저 2만리>에 나오는 니모 선장의 후일담인가?” <니모를 찾아서>라는 제목이 일으키는 첫 번째 상상이다. 니모가 노틸러스호와 상관없는 조그만 물고기의 이름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두 번째 생각이 떠오른다. “자연다큐멘터리가 아닌 다음에야 물고기가 주인공인 영화가 재미있어봤자 얼마나 재미있으랴?” 하지만 그것은 포유류의 오만과 편견이다. 픽사의 다섯 번째 장편애니메이션 <니모를 찾아서>야말로 관객이 무엇을 상상하건 그 이상을 보여주는 영화다. 제목이 친절히 예고하는 대로 영화는 열대어를 수집하는 치과의사에게 납치된 니모와 니모를 찾는 아빠 물고기 말린이 겪는 이중의 모험을 교대로 따라간다.

병원 수족관에 끌려간 꼬마 니모를 맞이하는 세계는 <토이 스토리>의 우디와 버즈가 사는 장난감 사회의 수중 버전이다. 통신판매나 애완동물가게 출신인 동료들을 지휘하는 바닷고기 길, 수조 벽에 찰싹 붙어 정보원 역할을 하는 불가사리 피치, 흥분하면 몸이 불어 둥둥 떠다니는 복어 블로트 등은 니모를 갱의 신참으로 받아들인다. 수족관 식구들은 매일 보는 게 그것뿐이라 본의 아니게 치의학에 조예가 깊어지긴 했지만, 늘 크고 푸른 바다를 꿈꾼다. 한편 평소의 심약함을 떨치고 대양을 건너는 장도에 오른 말린의 모험은 픽사의 전작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열린 공간에서 펼쳐진다. 그러나 무대만 넓혀놓고 우왕좌왕하기 일쑤인 액션블록버스터 속편들의 과오는 <니모를 찾아서>의 물을 흐리지 못한다. 배경은 판이하지만, 말린의 모험은 픽사가 애용하는 버디무비의 구조를 재연한다.

말린의 동행은 니모를 잡아간 보트를 목격하는 바람에 고생길에 합류한 파란 물고기 도리. 단기기억상실증이라는 지병이 있는 탓에 끝없이 자기 소개를 하고 주변이 캄캄해지면 옆친구의 말을 ‘양심의 소리’로 착각하는가 하면, 자기가 찾는 물고기가 니모인지 이모인지 잘 모르지만, 놀랍게도 영어부터 고래말까지 언어에 재능이 있어 보탬이 된다. 말린과 도리를 찰떡궁합 콤비로 만드는 힘은 하지만 도리의 외국어 솜씨 이상이다. 아들을 찾는 말린의 절박함은 건망증 탓에 언제나 미아 상태였던 도리에게 목표를 부여하고, 낙천적인 도리는 소심한 말린에게 긍정적인 인생관을 감염시킨다(나쁜 일을 다 까먹기 때문에 낙천적일 수밖에 없다).

<니모를 찾아서>는, 최근 몇년간 대작들의 실패로 드림웍스와 디즈니가 머리를 싸매고 있는 장편애니메이션의 성공열쇠가 2D냐 3D냐가 아니라 시나리오임을 시원스레 보여준다. <니모를 찾아서>의 세계는 위험으로 가득하지만 그중 어느 것도 뻔하지 않다. 무시무시한 이빨로 덮쳐온 상어는 “물고기는 친구다. 먹을거리가 아니다”를 복창하며 성격개조에 힘쓰는 채식주의자 지망생이고, 황홀한 등불은 아귀의 미끼로 밝혀졌다가 다시 니모가 끌려간 주소를 해독하는 조명으로 이용된다. 몸이 작고 지느러미가 불균형한 니모, 건망증 심한 도리는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그들의 결핍은 어떤 순간 무기가 되고 훈장이 된다. 캐릭터도 절묘하다. 껄렁한 10대마냥 떼지어 다니다가 매스게임으로 의사소통하는 은색 물고기떼, “나줘, 나줘” 하며 몰려드는 치사한 갈매기들, 항상 쌍으로 다니는 천성 때문에 유리벽의 그림자를 동생이거니 믿고 사는 줄무늬 고기, 아부쟁이 돌고래를 미워하는 애정결핍증의 상어, <리치몬드 연애소동>에서 숀 펜이 연기한 얼빠진 서퍼를 닮은 어휘력 짧은 거북이 등등. 종의 특성을 십분 활용한 캐릭터들은 평소 동물들을 바라보며 우리가 뜬금없이 펼쳤던 상상 그대로다.

뭐니뭐니해도 <니모를 찾아서>의 월척은 코미디언 엘렌 드제너러스가 탁월한 대사를 들려주는 건망증 환자 도리. 그녀는 가장 웃기는 조크뿐 아니라 영화의 메시지와 정서면에서도 핵심이다. 말린이 그녀를 떠난 한순간 “내가 누구지? 여기가 어디지? 소중한 뭔가를 잃어버린 것 같은데 그게 뭔지 기억이 안 나”라며 맴도는 도리의 모습은 폭소로 풀어진 관객의 가슴을 저리게 한다. “아들한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고? 그건 좀 웃긴 약속이지 않니?”라는 도리의 반문은 모든 부모의 교훈이며 “무슨 일이 있어도 계속 헤엄쳐, 계속 헤엄쳐”라고 흥얼대는 도리의 콧노래는 <니모를 찾아서>의 철학이다.

톱스타 캐스팅에 연연하지 않고 캐릭터에 꼭 맞는 배우, 심지어 캐릭터를 잘 이해하는 직원들을 성우로 동원하는 픽사의 전략도 성공적이다. 말의 눈과 입이 멀리 떨어져 있어서 표정묘사가 어렵다고 한숨을 쉬던 <스피릿> 애니메이터들의 불평이 무색하게 <니모를 찾아서>의 앨버트 브룩스와 엘렌 드제너러스의 개성은 열대어들의 아가미 주름과 지느러미 움직임 속에 그대로 살아 있다. 컴컴한 심해부터 수족관까지 빛과 수질이 천차만별인 다양한 상태의 물을 그리고, 만화체 캐릭터와 어울리게 리얼리즘의 강도까지 조율한 배경그래픽 기술도 <몬스터 주식회사>의 유명한 털 묘사를 초월한다.

픽사는 이제 솜씨 좋은 프로페셔널들의 전문 스튜디오를 넘어 독자적 스타일을 보유한 작가집단의 풍모를 갖춘 인상이다. 실없는 유머를 천진하게 즐기면서도 자연스러운 정치적 올바름을 잃지 않는 픽사의 다섯 장편은, 벌레도 장난감도 몬스터도 물고기도 함부로 해쳐서는 안 될 존재라고, 가장 폭력적인 힘을 지닌 것은 인간이므로 신중하게 사물을 바라보고 행동하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고 설득한다.

같은 3D 컴퓨터애니메이션으로 오스카를 탄 드림웍스의 <슈렉>이 이미 존재하는 동화의 역사를 언덕 삼아 비비고 일어선 ‘2차적 수작’이라면, <니모를 찾아서>는- 선배 <몬스터 주식회사>도 그랬듯- 누구의 거울도 되지 않으면서 스스로 스토리와 형식의 데코룸(decorum: 고전적 균형)을 이루어낸 클래식이다. 그러나 픽사의 천재적 장난꾸러기들이 원치 않는 것이 있다면 바로 어깨에 힘이 들어간 존경일 것이다. <니모를 찾아서>는 심층부터 해수면까지 온갖 유쾌한 물결이 마음의 모든 비늘을 적셔주는 빼어난 여름영화다.

:: 앤드루 스탠튼 감독 인터뷰

“진실과 재미에 같은 무게를 두었다”

<니모를 찾아서>를 쓰고 연출한 앤드루 스탠튼은 픽사에 아홉 번째 직원으로 <벅’스 라이프>를 감독했고 픽사의 모든 장편애니메이션에 공동작가로 참여했다. 스탠튼은 어린 시절 병원 수족관을 구경하는 재미에 치과를 찾던 추억, 아들과 모처럼 시간을 내도 “이건 하지 마라, 저건 조심해라” 하는 과보호로 만사를 망치는 아빠가 된 자신에 대한 반성이 11년 전 <니모를 찾아서>의 아이디어로 이어졌다고 말한다. <니모를 찾아서>의 낙천적인 거북 크러쉬의 목소리는 스탠튼의 것이다.

픽사의 뛰어난 점은 아이디어를 모아 스토리를 만드는 작업에 있는 것 같다.

끊임없이 진실에 대해 생각하며 진실과 재미에 같은 무게를 두려고 한다. <월 스트리트 저널>에 실린 조 모겐스턴의 비평 중 ‘스프레차투라’란 말이 있는데 그 뜻은 ‘아름다움을 숨기는 미학’이다. 학교에서 미술을 공부할 때도 어떤 작품이 극도로 단순해 보일 때 그렇게 되기까지 많은 피와 땀과 눈물이 있음을 느꼈다. 난 내 자신을 작가라기보다 개작 작가라고 생각한다. 뭐든 한번에 통과하는 건 믿을 수 없으니까.

코미디 감독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 앨버트 브룩스를 감독하는 기분은.

사실 연기 수정을 요구할 때 “이런 말을 해도 될까?” 멈칫했다. 하지만 앨버트는 감독 입장을 십분 이해했다. 톰 행크스에게 우디를 부탁했을 때처럼 단순히 웃긴 캐릭터가 아니라 작품의 중심이라고 설명했다.

전체 관람가 등급 영화에서 웃음을 끌어내는 비결이 있다면.

사람들을 웃기는 데 꼭 웃긴 농담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어떤 사실, 캐릭터의 걸음걸이, 두 장면의 연결도 웃음을 자아낸다. 좋은 스토리 안에는 웃을 요소가 많다.

예를 든다면.

도리는 건망증이 심하다. 너무 자주 잊어버리니까 성가시게 느껴지면서 짜증도 난다. 그러므로 그것을 웃음의 도구로 쓰는 것은 아주 조심스런 일이다. 그런데 건망증에 따르는 증세 중 하나는 늘 친절하다는 거다. 괴로운 기억이 없으니 늘 낙천적일 수 있다. 그런 낙천성에 대한 관객의 애정이 관객을 웃게 만든다.

픽사의 캐릭터는 직접 노래를 부르지 않는데.

애니메이션을 성공시키는 데 뮤지컬은 굉장히 중요하고 우리도 뮤지컬을 좋아하지만 그게 필수요소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1980년대 후반부터 애니메이션은 점점 더 큰 성공을 거둔 반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애니메이션의 정의가 좁아졌고 나는 그게 실망스러웠다. 애니메이션이 나오면 사람들은 한결같이 “어린이들에게 좋은 작품. 별 넷”이라고 쓴다. 나는 “말도 안 돼! 만약 실사영화가 그런 스토리로 전개됐다면 당연히 F를 받았을 거 아냐?”라고 생각했고, 벽을 넘어보자고 결심했다.

자료제공 브에나비스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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