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두 스타의 `개성`이 부리는 `성질`의 조합,<성질 죽이기>
2003-06-03
글 : 정승훈 (영화평론가)
■ Story

순둥이 데이브(애덤 샌들러)는 출장 가는 비행기에서 본의 아니게 물의를 빚어 ‘성질 죽이기’ 치료를 받으라는 판결에 처해진다. 프로그램 운영자는 알고보니 비행기에 동석했던 버디 박사(잭 니콜슨). 그런데 이상하게 박사는 데이브의 화만 돋우고, 그의 애인 린다(마리사 토메이)까지 넘본다.

■ Review

<어바웃 슈미트>가 잭 니콜슨의 영화이고 <펀치 드렁크 러브>가 애덤 샌들러의 영화라면, <성질 죽이기>는 이 둘의 영화일 수밖에 없다. 잭 니콜슨은 정년퇴직자의 무기력을 털고 다시 능구렁이 같은 카리스마를 선보이며, 애덤 샌들러는 예의 사람 좋은 얼굴로 위트 섞인 잽을 날리다 막판에 감동의 한방을 먹인다. 영화는 두 스타의 ‘개성’이 부리는 ‘성질’을 아이로니컬하게 조합하지만, 결국 로맨틱코미디의 정석으로 귀결된다. 그 과정의 아기자기함과 디테일의 풍성함에 녹아든 할리우드 컨벤션이야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역으로, 걸출한 배우 둘이 모였다고 영화가 두배 더 좋아진 건 아니다.

애덤 샌들러의 성장영화인 <성질 죽이기>는 그의 전작들에 담긴 미국식 가르침을 여전히 변주한다. 화낼 줄 모르는 ‘바보’에게 자신감을 찾아주는 ‘Anger Management’는 성질을 죽이기보다 잘 관리·활용해야 한다는 심리경영의 처세술이다. 성기왜소 콤플렉스가 있는 데이브는 자신의 소심증에 무의식적으로 화나 있었고, 유일한 치료는 당당한 자기 표현이었던 것이다. 그 무대인 야구장은 <웨딩 싱어>의 비행기 안과 <빅 대디>의 법정처럼, 들러리로 살던 남자가 만인의 조력 속에 한 여자(혹은 아이), 즉 가정에의 사랑을 선언하며 대중적 영웅으로 등극하게 되는 미국적 나르시시즘의 거울과 같다. 이는 용자가 미인을 얻는다는 식의 보수적 통념이 강화된 프로포즈 프로그램이다.

영화가 뻔한 교훈극이 안 되게 웃음의 문화코드는 더 두터워졌다. 화장실 유머와 에스닉 유머가 레즈비어니즘과 복장도착에 뒤엉키고, ‘열반’ 대신 ‘열받음’에 이르는 스님은 종교적 유머도 시도한다. 이런 키치 짬뽕 문화는 퀸스보로 브릿지와 양키스 스타디움, 전 뉴욕시장 루돌프 길리아니의 카메오 출연과 엔딩의 마천루에서 보듯, 영화의 숨은 주역으로 뉴욕을 내세운다. 데이브 덕에 자기 회의를 딛고 부러움을 사며 재기하는 9·11 이후의 뉴욕. 웃기지도 않는 건 반전처럼 첨부된 음모론(?)이다. 관객은 야구장의 관중처럼 뉴요커 데이브의 화려한 변신에 들러리 서서 뉴욕 사랑에 동참하도록 조작된다. 반미감정 따위의 성질은 죽이라고 권하는 듯한 애덤 샌들러의 침 못 뱉을 미소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I feel pretty>를 세상 행복한 듯 흥얼대지만, 관객에 따라 별로 ‘기분 째지지’ 않을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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