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냉정과 열정사이, <장화, 홍련> 염정아의 이중생활
2003-06-11
글 : 김혜리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세상이 배우라고 부르는 강렬한 인간들. 하지만 그들도 우리처럼 자기 안에 누가 숨어 있는지 미처 다 알지 못한다. 보통의 사람들은 살다가 어느 모퉁이에서 예고없이 내부의 이방인과 마주치는 날이면, 내가 성숙한 것이려니 흐뭇한 미소를 띤 채 평온한 잠을 청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만약 당신의 생업이 배우라면 절대 잠들어서는 안 된다. 바로 그 순간이 손톱을 세우고 눈을 부릅뜰 때다. 기억하라. 지금 거울 속의 생경한 눈빛을, 끊어질 듯한 신경의 떨림을, 낯선 힘이 멋대로 지배하는 팔과 다리의 감각을.

지난해 늦가을 어느 날 배우 염정아는 <장화, 홍련>의 안방에 놓인 호화로운 삼면경 앞에서 눈을 떴다. “저어… 제가 본 염정아는 이런 여자입니다. 혹시 정아씨는 그 여자를 아시나요?”라는 투로 염정아를 염정아에게 새롭게 소개한 것은 김지운 감독이다. 그는 <장화, 홍련>의 계모 은주를 연기할 배우로 염정아를 선택한 까닭을 사람들이 물어올 때, 그녀가 ‘젊고 아름다워서’, ‘표독한 카리스마가 있어서’라고 말하는 대신 그녀가 과민한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만나서 커피잔을 사이에 두고 대화하는 잠깐 동안 사방의 조그만 소음과 자극과 오염에도 “이게 무슨 냄새지? 저건 무슨 소리지?”라고 끊임없이 파닥대고 쫑긋거리는 염정아에게서 감독은, 온몸이 촉수 같아 그 옆에서 손가락 하나 까닥하는 것도 부담스러운, 그래서 불편하고 두려운 ‘적’을 보았다. “나에게 그런 면이 있었나?” 씩씩하고 수더분한 성격이라는 말이 익숙했던 그녀는 타인을 대하는 매너 안에 참을성 있게 은신해 있던 예민한 자아를 끌어내 낯을 익혀가기 시작했다.

염정아를 날카롭고 까다로운 여자로 상상하는 시선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실제로 염정아는 동물을 그리 좋아하지 않고 더러움을 씻어내는 목욕과 청소를 좋아한다. ‘예쁘고 옷 잘 입고 성격 못된 부잣집 딸’이라는 이미지는 1991년 미인대회를 거쳐 수순처럼 연기생활을 시작한 그녀에게 오랫동안 쓰고 다닌 모자와도 같았다. 그러나 그 모자에 덮인 머리 속에서, 이물감을 못 견뎌 타인을 내치고 겁이 나서 남을 겁주고 마는 가엾은 여자를 찾아낸 것은 <장화, 홍련>이 처음이었다.

“거기 자꾸 뭐라고 그러는 거야?” 인터뷰 사진을 위해 카메라 앞에 다소곳이 섰던 염정아가, 방 구석의 소곤거림을 그냥 넘기지 못하고 눈썹 끝을 치켜올린다. 몇달 동안 양수리 종합촬영소 안에 지어진 흉가 마루를 거닐며 신경의 끝을 갈고 또 갈아댄 후유증일까. 그렇게 장미와 연꽃을 따다 이름을 지은 소녀들과 나란히 서게 된 <장화, 홍련>의 그녀는, 온도에 민감해 흐린 날에는 절반만 핀다는 튤립처럼 사방에 불길한 주홍의 향기를 뿌려댄다.

계모 노릇이 그렇게 고역스러울 줄 처음에는 몰랐다. 시나리오를 읽고 “역할 있냐고 안 물어봤으면 어쩔 뻔했어! 다른 배우한테 갔으면 어쩔 뻔했어!”라고 탄성을 지를 때만 해도, 평생 연기해도 만날까 말까한 배역이라고, 써 있는 대로만 따라해도 화려한 캐릭터라고 행운만 기꺼워했다. 자매와의 실제 동거가 시작되고서야 염정아는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했다. 영화의 비급(秘急)을 누설하지 않고는 설명할 길이 없지만, <장화, 홍련>의 은주는 배우에게 큰 난제다. 그녀는 아무도 아닌가 하면 한 사람이기도 하고 때로 두 사람이며 자기인 동시에 자기의 그림자다. 특수효과 없는 블루스크린 연기라고 할까. 염정아는 굴절된 상만 보여주는 거울의 방에 갇혀 춤추는 무희가 되어야 했다.

간절하고 선명한 목표를 끌어안고 몸살을 앓는 배우는 권태로워진 연인의 마음을 일깨우듯 관객의 눈을 새롭게 휘어잡는다. 마음을 싣지 않고 미끄러지듯 흘러온 연기생활이 10년에 가까워졌을 때 염정아는 처음 우울을 앓았고 달라지기를 소망했다. 눈 밝은 관찰자라면, TV에 비치는 연기가 죽도록 창피해 일주일 내내 문 걸고 대본만 읽었던 <태조 왕건>, 남편에게 맞은 멍든 몸으로 도망자를 사랑하던 억센 사투리의 여인이 된 <순정>에서 그녀의 발돋움을 목격했을 것이다. <장화, 홍련>은 영화배우 염정아에게 새로운 숨을 불어넣는다.

<장화, 홍련>의 스크린은, TV의 인색한 화면이 그녀의 예쁘고 단정한 정면의 이목구비에 홀려 미처 거두지 못했던, 배우 염정아의 ‘전신’을 비로소 드러낸다. 처연하게 아래쪽으로 떨어지다 균열이 오면 격하게 비틀리는 옆얼굴의 선, 검은자위가 눈꼬리 구석까지 움직여 앞머리에 가리면 오른쪽 눈인지 왼쪽 눈인지 분간할 수 없는 무서운 눈, 세상 모든 것을 향해 덩굴처럼 집요하게 감기는 길고 가느다란 팔과 다리. 염정아의 육체는 혼자서도 연기한다. 어린 의붓딸과도 힘에 부치는 드잡이를 벌이며 메마른 공간을 휘젓는 맨발의 그녀는, 우리가 여배우의 육체가 발휘할 수 있는 도발적인 힘에 대해 얼마나 편협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는지 깨우친다.

염정아에게 영화는 오랫동안 ‘당신들의 천국’이었다. 나쁜 날씨는 지나간 것처럼 보여도 염정아는 섣불리 무지개를 기다리지 않는다. 서른을 넘겨 가장 완숙한 아름다움에 도달한 여배우가 많은 걸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의 가뭄이 너무 오래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자기의 아름다움과 추함을 제대로 알아봐준 렌즈 앞에서 느낀 희열의 기억은 한 배우의 세포에 새겨졌다. <장화, 홍련>에서 그녀는 말했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건, 잊으려고 해도 잊을 수 없고 지우려 해도 지울 수 없어서 평생 유령처럼 따라다니는 기억이라고. 그녀는 이제 쉽사리 도망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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