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살인의 추억><1호선><김밥싸는 남자> 배우 유승목
2003-06-11
글 : 문석
사진 : 이혜정
아,그 유들유들한 기자놈!

일단 그의 얼굴을 자세히 봐주시길. 상상력을 발휘해 그 얼굴에 알이 커다란 잠자리테 안경을 씌워보시라. 다음, 머리칼을 8 대 2 스타일로 나눠보자. 얼굴살은 조금 빼고 구식 양복을 입혀놓으면, 완성이다. 자, 이 상상 속 몽타주의 주인공이 누군지 아시겠는지. 정답은, <살인의 추억>에서 형사들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기삿거리를 찾던 지방신문의 박 기자다. 두 번째 살인현장에서 송강호가 “아, 그 박 기자 빠꼬미 새끼 안 오니까 속이 다 시원하네…”라고 했던 주인공이자 경찰서에서 형사 3명을 놓고 “주먹 쫙…”을 외치며 사진을 찍는 바로 그 기자 말이다.

눈썰미가 좋은 분이라면 드라마 <장희빈>에서 장희재의 부하로 출연하는 그를 기억할지도, 대학로 출입이 잦은 분이라면 <왕은, 돌아오지 않았다>에서 영친왕으로 나온 그를 떠올릴지도 모르지만, 유승목(34)을 대중에 알리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건 뭐니뭐니해도 <살인의 추억>의 박 기자다. 건들거리며 형사들로부터 정보를 빼내려다가도, 상황에 따라선 이들을 ‘조지기’도 하는 능청맞은 연기 덕에 그는 출연장면 수에 비해 꽤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리고 6월8일 막을 내린 인디포럼 2003을 찾은 관객이라면, 유승목이라는 이름을 머릿속에 뜨겁게 새겨넣게 됐을 것이다. (감독 이하)과 <김밥싸는 남자>(감독 하경용), 두 작품에서 주연으로 출연한 그는 쓸쓸하고 허한 모습의 현대인을 적나라하게 연기했다. 직원과 미진한 사랑을 나누는 불법 운전연습장 사장과 글을 쓰기 위해 공원을 전전하는 소설가의 모습은 우리 영혼의 그림자를 꺼내주는 듯했다.

그저 영화배우가 멋있어 보여 배우가 되려 했던 그는 연극영화과 입시에 실패해 재수 때는 축산 전공으로 대학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는 연극반 활동을 통해 꿈을 되살려냈고, 93년부터 98년까지 극단 가교의 단원으로 활동해왔다. 프로 배우의 길을 걷던 그는 98년 돌연 단국대 연극영화과에 늦깎이로 편입하게 됐고, 어느덧 대학원 과정까지 수료하기에 이르렀다. 학교에 다시 들어간 이후 그에게 변화가 생겼다면, 동료, 선후배들의 단편영화에 자주 출연하며 영화의 맛을 서서히 익히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의 ‘공식적’인 장편영화 데뷔작은 <굳세어라 금순아>지만, 사실 <박하사탕>이 될 뻔했다. 광주를 고향으로 가진 병사 역할을 맡았던 그는 “3일이면 끝난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하지만 일정은 늘어났고, 대학 졸업공연 스케줄과 부딪쳐 눈물을 머금고 중도하차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론 영화가 잡히면 스케줄을 완전히 비워놓는다”는 게 ‘생활의 지혜’가 됐다.

지난해는 그에게 정말 바쁜 1년이었다. <투란도트> 등 4편의 연극에 출연했고, <굳세어라 금순아>와 <살인의 추억> 등 2편의 장편과 두편의 단편영화에까지 등장했으니. 단편영화를 찍을 땐 ‘겹치기 출연’까지 했다. 촬영일정이 부분적으로 겹쳤는데, 2명의 감독이 단국대 동기생이다보니 다행히도 신경전은 없었다고.

현재 홍상수 감독의 신작 오디션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 그는 “캐릭터의 전체적인 삶을 보여주는 배우가 되는 것”을 궁극으로 삼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꽃미남은 아니지만 개성있는 얼굴과 또렷한 눈빛이 인상적인 유승목이 연기파 남자배우의 계보에 이름을 올리는 날은 그리 멀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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